<기자수첩>사법시험 존치에 달린 고시촌의 미래
<기자수첩>사법시험 존치에 달린 고시촌의 미래
  • 이승열
  • 승인 2015.04.2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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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관악구 대학동(옛 신림9동) 고시촌은 무척 독특한 동네다. 1975년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가 들어선 이래, 이 지역은 인근 서울대 학생들과 전국에서 몰려든 고시생들의 학습·주거공간으로 기능하면서 다른 동네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문화가 자리 잡았다.

곳곳에 있는 뷔페형 고시식당은 고시촌과 노량진에서만 볼 수 있는 식사문화다. 고시생들은 한 끼 3~4천원 내외의 식권을 다량으로 사서 끼니를 해결한다.

고시촌을 상징하는 주거공간인 고시원과 원룸은 1인 가구가 많은 이 지역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서울시의 2010년 통계에 의하면 대학동의 1인 가구 수는 1만1422개로 서울시 동 중 1위이며 전체 가구 수의 72%나 된다. 독서실과 고시학원, 헌책방, 복사집, 벼룩시장 등도 고시촌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대학동 주민들의 살림살이와 지역경제는 이렇게 고시생들과 함께 성장해 왔다.

그런 고시촌의 미래에 암울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8년 로스쿨 도입과 사법시험 폐지가 확정되고 나서부터다. 사법시험은 합격인원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2017년을 마지막으로 최종 폐지된다. 설상가상으로 2011년 5급공채시험으로 바뀐 행정고시마저 2017년까지 채용인원을 50%까지 단계적으로 줄이고 나머지는 민간경력자로 채용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지난해 나왔다. 외무고시도 2013년 폐지됐다.

이에 따라 고시촌 고시생 중 대다수를 점하던 사법·행정고시생들이 최근 몇 년 동안 눈에 띌 정도로 고시촌을 빠져나갔다. 고시촌의 슬럼화 우려까지 제기됐었지만 그나마 다행히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지역의 낮은 물가 덕에 젊은 직장인이나 신혼부부들이 고시생들을 어느 정도 대체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상대적으로 경쟁관계에 있는 노량진 수험가는 최근 7·9급 공무원 채용(일명 공시)이 늘어나면서 큰 활황을 맞고 있다.

고시촌 주민들과 학원들은 변호사시험(일명 변시)을 준비하는 로스쿨 수험생들과 노량진 공시생을 끌어오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역시 사법시험을 존치시켜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사법고시생들을 붙잡아 놓는 것이 고시촌의 가장 큰 현안이다.

4.29 보궐선거 관악을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들은 사법시험을 존치시키겠다는 공약을 잇따라 내놓았다. 빅3라 볼 수 있는 오신환(새누리), 정태호(새정치), 정동영(국민모임) 후보는 모두 사법시험 존치를 적극 약속했다.

과연 1년짜리 시한부 당선자가 사법시험 존치를 실현할 수 있을까. 대학동 고시촌은 옛 영화를 다시 누릴 수 있을까. 지역경제의 흥망이 국가고시의 존폐 여부에 달린 상황이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