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원숭이와 노인
<시정칼럼>원숭이와 노인
  • 시정일보
  • 승인 2015.04.30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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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노인은 고양이, 강아지와 함께 3등 가족이다.”, “평소 좋은 옷은 못 얻어 입는다.”, “효자보다 악처가 낫다.”, “일찍 유산을 나누어 줬더니 재산 잃고 자식까지 잃어 버렸다.” 심지어 "노인이 가족을 타이르거나 의견을 말하면 간섭한다고 불평하거나 화를 낸다." 며칠 전에 경로당에 들렸다가 우연히 들은 이야기들이다.

요새 신문이나 TV에서 다루는 노인 문제 중 가장 심각한 주제는 노부모와 가족 간의 소통, 이해의 단절이다. 노인들이 겪고 있는 우울, 불안, 공허감, 무가치 혹은 무기력은 삶을 절망감에 빠지게 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관점은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게 만들어 심한 우울증이나 극단적으로 자살로 이어지게 한다.

서양인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던 우리나라의 미풍양속인 효(孝)는 사라지고 있다. 이 귀중한 전통문화는 꺼져가는 화롯불 지경이 되어, 말 그대로 풍전등화의 시대적 위기를 맞고 있다. 젊은 세대는 부모를 모실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급하면 부모의 재산을 제 예금통장인양 꺼내 쓸려고 한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부모는 눈물을 머금고 자기의 노후를 포기하면서까지 자녀를 도와준다. 이런 불공정한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 이는 피(血)를 나눈 사이이기 때문이고 한국인의 독특한 정서인 정(情) 때문이다. 그런데 자녀들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면 자기가 원해서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고, 부모가 자기들 좋아서 나를 만든 것이니까, 끝까지 책임져 주어야 마땅하다는 막말을 할 수도 있다.

이런 막말을 하는 패륜아는 없겠지만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따지고 나오면 분통이 화산같이 터져 나오지만 매로 다스릴 수도 없다. 어제 저녁뉴스를 보니까 스마트폰 게임을 한다고 어머니가 아홉 살 아들을 때리니까 그 아들은 어머니를 경찰에 고발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으면 말세(末世)라고 난리가 났을 텐데 이제는 그저 그러려느니 하고 혀만 차고 지나간다. 아마도 그 어린이는 격리 당하지 않고 여전히 학교에 다닐 것이다.

오히려 여론은 양비론(兩非論)으로 양쪽 모두 잘못이 있다고 넘어가고 있다. 60,70,80세대는 가족관계로만 보면 가장 불운한 세대이다. 정성을 다하여 부모께 효도하였는데, 자식한테는 효도를 받지 못하는 마지막 세대이고, 가족 먹여 살리느라고 뼈 빠지게 일하다가 은퇴를 하여 노후를 좀 즐기려고 했더니, 자식들한테 벌벌 기는 불쌍한 세대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흔히 오늘의 노인들은 가족과 사회로부터, 아니 자신에게조차도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과연 그들이 어디까지 쫓기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노릇이다.

노인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노부모가 계시든 안 계시든 자신들의 노년기를 코앞에 둔 중 장년기의 세대들도 오늘의 노인문제가 그들 자신의 문제로 닥칠 것을 예감하면서 벌써부터 나이 어린 자식세대와 노인세대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어가는 압박감과 위기감을 몸소 느끼며 살고 있다.

본래 사람, 소, 개 그리고 원숭이는 조물주로부터 동일한 30년의 수명을 부여받았다는 독일의 우화가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사람만은 30년 수명이 짧다는 불만을 토로하며 더 살기를 바랐고, 다른 동물들은 30년이 너무 길고 고통스러워 그 일부를 반납하겠다고 항의하여 소는 18년, 개는 12년, 원숭이는 10년을 내 놓았단다.

그래서 소, 개 그리고 원숭이가 반납한 40년을 사람한테 특별 상여금 격으로 주어 결국 사람만 70년 이상의 수명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우화는 산업혁명 이후 오늘까지 인간의 노화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여러 문제점들을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장수하고 싶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그에 따른 책임과 사회적 곱지 않은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

사실상 인간이 조물주로부터 받은 30세까지는 영유아기와 청년기로 부모의 슬하에서 보호 받고 사는 기간이고, 그 후 18년(31-48세) 동안은 부모의 곁을 떠나 장년기로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소와 같은 생활, 또 12년(49-60세) 동안은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는 장년기로 흔히 개 팔자로 표현되는 안정된 생활, 그리고 10년(61-70세) 동안은 동물원에서 뭇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는 원숭이와 같은 생활이 노인들의 현실이다.

따라서 오늘의 노인들이 원숭이같이 주위에서 놀림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건지 내 나이로서는 아직 실감나지는 않지만, 혹시 미지의 내 모습은 아닌지 자못 마음이 불안해지는 이유는 무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