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뉘엘 카레르의 <적>을 읽고
엠마뉘엘 카레르의 <적>을 읽고
  • 시정일보
  • 승인 2015.05.14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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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양이와는 다르게, 또 느릅나무와는 다르게
   

        이해남 주무관

    (동작구청 홍보전산과)

 

[시정일보]엠마뉘엘 카레르의 ‘적’이라는 소설에는 자신의 존재 기반이 모두 거짓인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유능한 의사로 알려졌지만, 그건 자기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속인 결과입니다. 그는 한 번도 세계보건기구에 소속된 유능한 의사였던 적이 없습니다. 그가 해외 학회에 다녀와 아이들에게 안겨주었던 각 나라의 선물들은, 그가 공항 근처의 상점에서 고심하며 고른 것들이었습니다.

가족에게는 유능한 남편이자 다정한 아빠, 주변 사람들에게는 존경받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늘 겸손을 잃지 않는 사람. 그게 그였습니다.

말하자면, 아이들에게 키스한 후 세계보건기구로 출근하는 대신, 카페나 자신의 차 안에서 한 무더기의 신문을 읽으며 그는 다른 한 세계를 살아냈습니다.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그 자신이 창조한 완벽한 거짓의 세계에서 그 자신이 창조한 자신을 산 것입니다.

그러나 완벽한 진실의 세계라는 게 존재하지 않듯, 완벽한 거짓의 세계도 없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거짓과 완벽한 진실을 견딜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완벽한 거짓과 완벽한 진실이 우리를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세계는, 그가 만든 거짓 세계는, 그 완벽성이 존재의 조건입니다. 그러므로 그 세계는 부서지는 것이 운명입니다.

그 세계가 위태로워지자, 다시 말해 그의 모든 존재 기반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자, 그는 자신이 만든 세계에서만 존재해야 했던, 그의 가족과 부모를 살해하고 맙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까요? 자신이 자신이 아니고자 하는 욕망. 이 욕망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금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사소한 거짓말 한번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단지 조금 더 사랑받고 싶어서 말입니다. 우리는 고양이와는 다르게, 또 느릅나무와는 다르게, 사랑을 욕망하는 존재이니까요. 이 경우엔 그 사소한 거짓말이 겹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고 말았습니다만.

어떤 사소한 이유로 그의 삶을 바꾼 거짓말은 시작됐을까요? 언제부터 거짓말이 진실을 대체하기 시작했을까요? 어떻게 그의 거짓말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넘어선 걸 까요? 그가 잡지를 보거나 산책을 하며 보내야 했던, '퇴근 이전의 시간' 동안, 그의 머릿속을 채운 것은 어떤 생각이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그는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만,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듯한 옷을 걸치고, 지성이 담긴 대화를 나누는 멋드러진 내가, 불안정한 욕망으로 뒤엉켜 있는 이곳의 저를 가만히 응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