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무궁화와 청바지
<특별기고>무궁화와 청바지
  • 시정일보
  • 승인 2015.06.1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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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일/시인,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
   
 

[시정일보]무궁화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나라꽃이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애국가에도 나온다. 상고시대부터 우리 민족과 인연을 맺어온 우리의 국화다. 나라의 각종 문양과 국회의원 배지문양도 무궁화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무궁화꽃은 나라를 상징한다고 서술되어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무는 종묘장에 가면 알 수 있다. 구매하는 손님의 선호도에 맞춰 준비해 놓기 때문이다. 종로의 종묘장에 들어서면 넝쿨장미 복사꽃을 비롯하여 유실수로 넘쳐 난다. 그러나 국화인 무궁화나무는 쉽사리 보기가 어렵다. 관공서나 구청 화단마저 무궁화나무를 마주치기가 쉽지 않다. 그마저 귀퉁이에 서 있고 진딧물로 번쩍거린다. 시선이 돌아간다.

청바지는 질긴 바지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즐겨 입는다. 나이를 불문하고 자유의 저항이란 상징으로 사랑받는다. 제임스딘의 <자이언트>라는 영화 까지 등장한 패션이다.

쇼핑 채널에선 청바지제품을 좋은 시간대에 판매한다. 계절에 상관없이 청바지는 쇼핑몰 채널에서 인기품목이다. 동대문 시장이나 남대문 시장에 가면 청바지 코너는 넘쳐난다.

6월 담장의 노랑, 빨강, 흰색의 장미가 밝게 웃듯 계절에 맞게 거리에 활보하는 젊은이들의 차림은 다양한 색상의 청바지가 시선을 끈다. 청바지에 무슨 색이 있겠느냐 하겠지만 다양한 색상은 그야말로 창작의 무한을 보인다.

서두에 ‘무궁화와 청바지'라는 제목을 놓고 무슨 뚱딴지냐고 할 수 있다.

대비란 좋은 것과 나쁜 것의 비교를 의미한다. 대한민국에서 청바지와 무궁화를 대비한다는 것은 군사정권 시절에는 상상을 할 수 없다.

나라꽃을 비하한 죄명으로 용공이나 종북자로 몰렸을 것이다. 감히 청바지와 무궁화를 비교 한다는 것은 청바지처럼 너나없이 무궁화를 가까이 하는 나무로 만들자는 강한 주장이다.

무궁화와 청바지! 비교한다는 자체가 엉뚱하거나 이치에 맞지 않다. 그러나 아닌 것은 아니라고 공론화 할 시점이다. 거듭 재론하자면 6월이 가기 전 무궁화에 대한 사랑과 의문을 한 번은 논할 시점이 왔다.

무궁화가 국화로서 국민의 사랑을 받게 하기 위해서는 청바지와 같은 선호도를 갖추어야 한다. 봄이 되면 국내에 10여개의 벚꽃축제가 있다. 진해벚꽃 축제엔 300만이 모여든다. 벚꽃나무의 식재율은 140만 그루로(23.5%) 가장 많이 분포된 것을 확인한다. 은행나무 16.4%, 이팝나무 6.4%, 느티나무 6.3% 등의 순으로 무궁화는 5.6%의 5위다.

워싱턴 백악관 앞에 호숫가에는 봄이 되면 일본인들이 심어놓은 벚꽃축제로 미국이 떠들 석 한다. 워싱턴시의 재정 30%를 벚꽃축제에서 벌어 들인다.

벚꽃이 사랑을 받는 것은 아름답기 때문이다. 사랑받는 것은 강요가 아니다. 마음과 눈에서 나오는 저절로의 자기표현이다. 무궁화나무가 사랑 받기 위한 제언을 한다. 육종을 과감하게 개발하여야 한다. 예산을 들여서라도 카이스트에 삼림(森林)학자 개발팀을 발족하고 나라의 자존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어찌 일본의 상징인 벚꽃에 밀려서 된다는 말인가. 나라의 상징 꽃은 국격이다.

무궁화를 벚꽃이나 장미꽃처럼 사람들이 서로 서로 구입하여 담장 밑에 식수하도록 하여야한다. 봄날, 멋지게 휘날리는 풍장(風葬)의 벚꽃놀이처럼 무궁화도 지방자치구들이 꽃축제 나무로 수종을 개발하여야 한다.

백악관 앞의 호숫가, 벚꽃을 모두 뽑아내고 아름다운 무궁화를 심자는 여론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키 작은 무궁화, 키 큰 무궁화도 개발하여 화분에 심자. 향기 나는 무궁화도 만들어 벌과 나비들이 찾아오게 하자. 함평 나비축제장에도 무궁화 꽃이 만개하여 수많은 관람자들이 무궁화의 아름다움을 극찬하게 하자.

수종개발이 불가능하다면 과감하게 국민의 뜻을 묻고 새로운 나무로 국화를 바꾸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바꾸는 것은 아름다워지기 위한 수단이다. 바꾸는 것에 소극적인 것은 내일에 대한 후회와 범죄다. 조국을 사랑하는 방법은 다소의 소란이 일수도 있다. 그것이 발전이고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진딧물이 만개하고 국민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면 진즉부터 공론화하였어야 한다. 무궁화의 방치는 국회의 업무태만이다. 정부 스스로의 업무방해다. 청바지는 그냥 청바지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변화를 거듭해 왔다. 무궁화도 청바지처럼 개량하여 사랑을 받아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