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전자정부, 그리고 5000원
TV전자정부, 그리고 5000원
  • 시정일보
  • 승인 2005.05.1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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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용식 기자


5000원으로 할 수 있는 게 뭘까. 허기진 속을 채워주는 순대국밥, 집 앞 꽃집에서 산 장미와 안개꽃 한 다발, 그리고 세계적인 커피전문점의 커피 한 컵 등이다. 순대국밥을 먹으면 너덧 시간은 배불러 행복하다. 장미와 안개꽃 한 다발은 친구나 아내를 하루쯤은 기쁘게 한다. 커피 한 컵은 유행에 뒤쳐지지 않은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게 한다.
꽤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또 있다. 디지털 셋톱박스를 빌리는 일이다. 그리고 TV전자정부를 신청하면 된다. 그러면 한 달 동안 편하고 유쾌할 수 있다. 세상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어쩌면 요즘같이 어려운 생활에 임대료 낼 형편이 되겠냐는 따뜻한 배려로 셋톱박스 임대료도 지원해 줄지도 모른다.
한 2년 정도만 참자. 그게 힘들다면 강남구로 이사하자. 강남구가 8월부터 TV전자정부를 시범서비스하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친하지 않은 어른을 모시고 있는 집이라면 서두르자. 노인정에서 10원짜리 고스톱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부모님들, 아침이면 만원전철을 타고 탑골공원에 가시는 부모님들에게 이 기쁨을 선사해 효도하자.
이 사업을 주관하는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TV전자정부는 버튼만 누르면 뉴스도 듣고, 세금도 내고, 여론조사에도 참여할 수 있는 ‘알라딘의 요술램프’다. 8월에는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강남구가 정부 및 지역소식, 설문조사 등을 TV로 서비스한다. 10월에는 주민등록등초본과 토지대장 등 민원서류 50여 종을 신청·열람·발급하고, 12월부터는 자동차세와 재산세 등 세금을 낼 수 있다. 나중에는 의료서비스도 받고 수학능력시험 강의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라도’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한층 수준 높은 행정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게다가 미국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을 제치고 ‘세계 처음으로 하는’ 서비스다. 더욱이 독도가 ‘지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보다 빨리 했으니 이 얼마나 멋진가. 대한민국 만세!
그런데 고민도 있다. 텔레비전 시청료의 2배인 월 5000원의 셋톱박스 임대료는 누가 낼까. 또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힘든데 5000원을 내고 한가하게 TV를 보면서 뉴스 보고, 세금 내며, 설문조사에 참여할 여유가 있을까. 그리고 자기들 뉴스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마땅히 해야 할’ 행정서비스인데 5000원-직접 가면 1600원-씩이나 들여서 TV전자정부를 신청해야 하나.
方鏞植 기자 /argus@sij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