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장칼럼>지방자치 20년, 금고가 비어간다
<단체장칼럼>지방자치 20년, 금고가 비어간다
  • 시정일보
  • 승인 2015.07.1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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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길형 영등포구청장
   
 

[시정일보]‘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호주머니가 넉넉해야 남을 돌볼 수 있다는 뜻으로, 지자체의 경우 재정이 풍부해야 주민을 위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지자체의 살림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주민들의 기대치는 높아지고 복지수요 또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반면 재정자립도는 갈수록 낮아져, 작금의 지자체는 가뭄에 하늘만 쳐다보고 농사를 짓는 ‘천수답’의 농부 신세와 다를 바가 없다.

영등포의 경우만 해도 지난 2004년 재정자립도는 73.5%였으나, 올해는 44.2%로 지난 10여 년간 30%나 줄었다. 자체 사업을 할 여력이 거의 없는데도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5위라고 한다.

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낮아진 것을 경기 침체에서 찾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국세와 지방세간의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큰 것 같다.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은 8대 2지만 세출 비율은 4대 6으로 지자체의 세출 수요가 훨씬 크다. 또한 각종 사업에 있어 일정 비율을 지자체에 부담하도록 한 매칭사업의 증가도 큰 몫을 차지한다. 예를 들면 어르신 일자리 사업의 경우 국가와 서울시, 자치구가 각 30:35:35를 부담한다. 재정의 규모와 상황이 다른데 비슷한 비율을 부담하는 것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늘어나는 복지관련 비용과 이런저런 경상비를 빼고 나면 실제 구청의 사업예산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다 보니 매년 예산을 편성할 때만 되면 각 지자체마다 비상이 걸린다. 필자 또한 가을만 되면 예산 편성에 힘(?)을 실어달라는 부서장들에게 시달리곤 한다. 눈총을 받으며 컬러 프린트를 하거나 세입 증대를 위해 번호판을 떼러 다니는 것은 더 이상 낮선 모습이 아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구는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지난해 서울시 주민참여 예산과 각종 외부평가를 통해 50여억원의 예산을 추가로 확보하고, 계약심사를 통해 10억원이 넘는 지출을 줄이기도 했다. 이제는 도리어 구청의 살림살이를 감시해야 할 구의회에서 계약심사제도의 엄격함을 지적하며 원활한 업무추진을 걱정할 정도이다.

그래도 부족한 예산은 직원들의 업무에도 불편을 초래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의 손발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용 컴퓨터나 행정차량 중에서 내구연한을 훨씬 넘긴 장비의 비율이 30%가 넘었다.

물론 중앙정부와 서울시도 자치구를 위해 많은 재원을 투입하고 있다. 우리구도 지난해만 각종 국·시비사업의 발굴과 매칭사업으로 총 1600여 억원의 교부금을 받았다. 총 세입 4750여억원의 30%가 넘는 금액이다.

그러나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교부금은 그 사용처가 정해진 것이 대부분으로,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사업이나 지자체가 주민들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추진하는 사업 중에서도 일부분만 시혜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자체의 재정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 일환으로 서울시 자치구들과 함께 서울시에는 조정교부금 개선과 주요 시비보조사업 보조율을 인상해 줄 것을 요구했다. 중앙정부에는 보편적 복지사업의 국고보조금 기준보조율을 개선하고 지방소비세를 현행 11%에서 16%로 향후 20%까지 올려줄 것을 건의한 상태이다.

올해는 지방자치가 부활한지 20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며, 지방자치는 그 동안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에 많은 기여를 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오히려 주민세를 인상하지 않으면 국고보조금을 깎겠다고 엄포를 놓는 등 지자체의 자율성을 존중하기보다는 중앙정부에 대한 예속을 점점 강화하는 듯하다.

이제 정부는 성년을 맞은 지방자치가 홀로서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지자체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이러한 방안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통해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