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는 세상>> 국어 국사교과서 수정 '헌법대하듯' 신중하게
우리사는 세상>> 국어 국사교과서 수정 '헌법대하듯' 신중하게
  • 시정일보
  • 승인 2015.07.2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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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 (전 국방부 기획국장)
   
김국헌 전 국방부 기획국장

[시정일보] 3R, 즉 읽기(reading), 쓰기(writing), 산수(arithmetic)은 어느 나라에서든 초등교육의 기초다. 청소년들이 불과 10년 전에 나온 책을 읽기 難解해 하는 한국의 어문교육은 잘못된 것이다. 하기야 중국에서도 簡字로 교육받은 청소년들이 古文을 읽기 어려워하고 한국 관광객이 蘇東坡의 赤壁賦를 줄줄 읽어 내려가는 것을 보고 新奇해 한다고 하니 위안이 된다고 할까?  

우리가 국민학교에 들어간 서기 1955년은 단기 4288년으로 소위 쌍8년이라고 하여 자유당의 부패가 滋甚해질 때다. 우리는 2학년때부터 한자를 더듬거리며 해독하면서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5~6 학년 때에는 거의 신문을 해독할 수 있었고 더딘 아이들도 중학생이 되어서는 신문 읽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1960년대는 思想과 知性의 寶庫인 思想界를 고등학생도 읽었다. 이 모두가 오늘의 젊은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은 아닐는지?

사회과목은 바이마르 헌법을 참조하여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의 公民을 배웠는데 무엇보다도 自由民主主義와 法治主義의 기본에 대해 배웠다. 419혁명은 국토방위, 납세, 근로와 함께 교육을 국민의 4대 의무로 규정하며 전 국민이 보통교육을 받게 한 이승만 정부의 소산이다. 당시 국민학생은 헌법 前文을 외우는 것은 물론, 1장 총강, 2장 國民權利義務는 암기하였으며 103조로 되어 있는 憲法 全文을 암기한 학생도 있었다. 열두 살이면 충분히 이러한 지적의욕을 가질 수도 있는 나이이다. 영국의 James Mill은 아들 J. S. Mill에게 각별한 기대를 가지고 조기교육을 시켰는데 Mill의 자유론 등 不朽의 작품은 20세 이전에 초고가 잡힌 것이다.

516이 일어나면서 헌법 前文에 이상한 문구들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특히 1972년 유신헌법은 제헌헌법을 중심으로  思考의 틀이 형성된 젊은이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때 한국적 민주주의의 분식에 동원된 학자들은 한태연 갈봉근 박일경 등이다. 정신문화연구원도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이에는 사학자 이선근 등이 앞장을 섰다. 홍문관 대제학의 권위를 갖던 서울대학교 총장이 한낱 문교부의 관료로 전락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국군의 이념적 지표가 된 것은 1968년에 제정된 군인복무규율이다. 사관학교에 입교한 생도들은 군인복무규율을 모두 외었다. 특히 강령 10개항은 반드시 암송하여야만 했다. 국군의 이념에서는 ‘국군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수호하고 자유와 독립을 보전하며 국가를 보위하기 위하여 국민의 자제로서 이루어진 국민의 군대이다’라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이 군인복무규율은 이병도 박종홍 등 당대 석학의 자문을 받아 이재전 장군 등이 기초한 것이지만, 대통령령으로 공포된 것이니만큼 박정희의 작품으로 보아도 된다. 이러한 박정희가 4년 후 시월유신이라는 해괴한 굿판을 벌인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국가적 역사적 비극이다.

국어와 국사 교과서는 국가가 책임지고 만들어내야 된다. 건국 초기 편수국장은 우리 말본의 기초를 확립한 외솔 崔鉉培였다. 爲堂 鄭寅普는 (한민족이라면 누구도 激昻을 누를 수 없는)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로 시작되는 광복절 가사를 비롯한 4대 국경일 경축가사를 지었다. 嘉藍 李秉岐와 鷺山 李殷相은 많은 노랫말과 명문학교 교가의 가사를 지었다.   이들이 우리 말과 혼의  原型과 基礎를 定立한 것이다.              
국어와 국사 교과서는 탯줄과 같다. 一字一句의 수정도 헌법과 같이 신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