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길은 본래 주인이 없어,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
<기자수첩>길은 본래 주인이 없어,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
  • 이승열
  • 승인 2015.10.2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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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무릇 사람에게는 그침이 있고 행함이 있다. 그침은 집에서 이뤄지고 행함은 길에서 이뤄진다.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인(仁)은 집안을 편하게 하고 의(義)는 길을 바르게 한다고 했으니, 집과 길은 그 중요함이 같다. 길에는 본래 주인이 없어,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

조선시대 지리학자인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1712~1781)이 <도로고(道路考)>에서 쓴 글이다. 핵심은 “길에는 본래 주인이 없어,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라는 문장이다. 길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은 그 길을 갖게 된다. 김훈은 <자전거여행>에서 이를 ‘공적 개방성’이라 표현했다. 신경준이 말하는 ‘집’과 ‘길’은 동등한 위치에 있지만 ‘길’은 ‘집’을 갖는 것과 같은 ‘사적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길’마저도 소유하려 해 경적을 울리고 앞차를 욕한다. ‘떠나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으로 집을 나서면 될 일이다. 그러면 세상이 ‘내 것’이 된다.

기자는 얼마 전 157km 서울둘레길과 18km 한양도성길을 모두 돌았다. 서울둘레길 완주 인증서와 한양도성길 완주기념배지도 받았다. 몹시도 게을렀던 내가 먼 길을 떠나겠다고 마음먹기까지는 서울시 출입기자로서 썼던 서울둘레길 소개 기사의 압박이 컸다. 글을 써놓고 가보지 않는 것은 겸연쩍은 일이었다. 막상 시작한 서울 여행은 사람을 들뜨게 했다. 그 들뜸은 서울둘레길을 마친 후에도 한양도성길까지 나를 이끌었다.

20여년을 살았던 서울은 내가 알았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곳이었다. 서울둘레길과 한양도성길은 서울의 산과 강, 도심과 외곽, 과거와 미래를 모두 보여준다. 사람이 사는 곳과 살지 않는 곳, 역사의 영광과 오욕을 거짓 없이 드러낸다. 인왕산과 북악산에서 경이로움을, 수락산과 대모산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관악산과 북한산에서는 아직 날것 그대로의 자연이 숨 쉬고 있었고, 안양천에서는 안락함이 흐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내가 사는 이 땅, 이 도시가 좋은 곳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허황되고 바쁘고 덧없는 해외여행보다 나의 터전을 보고 느끼고 공부하는 것은 얼마나 사람을 뿌듯하게 하는지.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책무 중 하나는 ‘주민의 복리(福利) 증진’이다. 여기서 ‘복리’는 ‘행복과 이익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즉, 지방자치단체의 모든 행정은 주민의 행복과 이익을 더하는 데 목표를 둬야 한다.

서울둘레길과 한양도성길은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에게 선물한 행복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정표가 없어 엉뚱한 길로 들어서는 일이 간간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길은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 어서 서울을 ‘내 것’으로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