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최후의 승리, 인내하는 자에게
<시정칼럼> 최후의 승리, 인내하는 자에게
  • 시정일보
  • 승인 2016.02.1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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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수많은 영웅호걸들의 활약상과 신출 기묘한 계책들이 난무하는 ‘삼국지’ 이야기는 언제 읽고 들어도 흥미진진하다. ‘삼국지’는 진나라의 학자 진수(233-297)가 중국 후한 시대 말에 패권을 다퉜던 위(魏), 촉(蜀), 오(吳)의 3국 역사를 기록한 정사(正史)이며, 후대에 소설가 나관중(1330?-1400)은 그 ‘삼국지’에 전승되어 온 이야기들을 덧붙여 역사 장편소설을 내놓았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삼국지’는 역사소설 <삼국지연의>인 셈이다.

‘삼국지이야기’는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까지 예부터 소설뿐만 아니라 희곡으로 만들어져 널리 공연되었고, 현대에 와서도 영화나 컴퓨터 게임, 애니메이션 등으로 유용되고 글자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전달되었다. ‘관우’는 민간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어 관제묘(關帝廟)가 곳곳에 세워지기도 하였으며, ‘삼국지’에서 비롯된 삼고초려(三顧草廬)나 계륵(鷄肋), 읍참마속(泣斬馬謖) 등의 표현이 고사(故事)와 함께 널리 쓰이고 있다.

지난해 가을 모처럼 민주화 운동 동지들과 ‘삼국지’의 무대였던 중국 후베이성(湖北省)의 장강, 양번 의창, 백제성, 형주고성, 황화루, 삼국적벽 등을 찾아 2000㎞의 역사적 현장을 실제 답사한 체험을 바탕으로 전투 장면들과 영웅호걸들의 활약에 대해 생생하게 토론했던 기억이 오늘따라 유난히 새롭다.

그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이었던 것은 영웅호걸들의 빛나는 이름 뒤에는 전쟁으로 고통받았던 민초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애써 강조한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일정동안 해박한 해학과 더불어 전문가답게 “최후의 승리, 인내하는 자에게”라는 ‘사마의(179-215)' 리더십을 반추케 해 주었다.

요즘처럼 좀체 안녕치 못한 한국사회를 지켜보면 4월 총선 표심의 향배가 관전포인트다. 새누리당의 치열한 경쟁이 ‘친박 대 비박 대 진박’ 삼국지를 상상케 한다. 야당도 동일하다. 김한길, 안철수, 문재인, 한상진, 김종인, 표창원 등의 삼국지 인물평이 페이스북을 통해 많이 떠돌아다닌다.

어쨌든 ‘삼국지’ 등장인물은 이렇다. 자만에 빠진 '관우'가 허망하게 죽자 ‘장비'는 그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복수를 다짐하다 부하에게 죽임 당하고, ‘유비'마저 절치부심하다 세상을 떠난다.   북벌에 나선 ‘제갈량'이 오장원두에서 위나라와 일전을 앞에 두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돌풍이 몰아치더니 촉의 군기가 부러지고, '제갈량'은 그것을 자신의 운명이 다한 것으로 보고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촉의 운명도 그것으로 끝이 난다. 

평생 ‘조조'와 그의 친족들에게 의심을 받고 무시를 받아 왔으며, 죽은 ‘제갈량'에게도 미치지 못한다는 수모를 받아 온 사람이 ‘사마의'이다. 모두 ‘제갈량'의 탁월함을 칭송할 때 ‘사마의'는 언제나 2류 인생이었다. 그러나 ‘유비'(촉), ‘조조'(위), ‘손권'(오) 모두 삼국통일을 완수하지 못했지만 2류 인생 ‘사마의'의 후손이 삼국을 통일한다. 탁월함의 상징이었던 ‘제갈량'은 실패를 다룰 줄 몰랐고, 한 국가의 운명을 군기가 부러지는 사소한 징조에 걸었다. 그러나 ‘사마의'는 실패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숱한 모함과 수모, 2류 인생의 설움 그리고 죽음의 고비에서도 잡초처럼 일어나는 법을 알았고, 하늘마저 자신을 돕는다고 굳게 믿었다.

결국 최후의 승리는 탁월함에 있지 않다. 최후의 승리는 ‘인내’하는 자에게 있다. 세상에는 남보다 앞서가는 지적 능력을 가진 수재만이 값어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세상사를 감안해서 바라보면, 자신만의 독선에 빠진 완벽주의자 ‘제갈량' 같은 인간형 보다는 사유의 영역을 확산시켜 적응해 간 최적주의자 ‘사마의' 같은 2류 인간형이 더 값진 세상을 만드는 데 공헌한 예가 무수히 많다. 참고 인내하며. 울며 씨앗을 뿌리는 자는 웃음으로 그 단을 거두게 된다.

‘조조’라는 호랑이를 길들인 ‘사마의’ 처세의 진수는 무엇인가. 자신을 이기는 자가 최후의 승자가 된다. 자기통제의 승부사 ‘사마의’라는 인물을 다층적으로 학습하는 정치인들이 많았으면 한다.                            (한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