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위기의 ‘북촌’, 결단이 필요하다
<기자수첩>위기의 ‘북촌’, 결단이 필요하다
  • 윤종철
  • 승인 2016.03.03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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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새벽 2시, 초인종이 울려 나가보니 중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바지가 젖은 채 서 있는 거에요. 얼른 화장실로 안내하고 옷을 내줬어요”

다소 극단적인 이야기 같지만 북촌 주민들에겐 자주 있는 일이라 한다. 주민들은 밤낮없이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아예 건전지를 빼 놓지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잘 수 없는 건 매한가지라고 입을 모은다. 편의시설은 물론 주변에 공중 화장실 하나 짓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단 이뿐만이 아니었다. 정주권은 사라지고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처리 문제와 악취, 소음, 사생활 침해 등 주민들은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었다.

한 주민은 “몇 해 전에는 한옥에서 잠을 자던 일가족 4명이 집이 무너지면서 모두 사망하기도 했다”며 “지금도 오래된 집들이 많은데 보존도 좋지만 주민들의 주거환경부터 개선하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 아니냐”며 토로하기까지 했다.

기자가 이렇게 불쑥 ‘북촌’ 주민들의 이야기를 서두에 꺼낸 것은 한옥 관광1번지 ‘북촌’이 이대로 가다가는 붕괴될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매년 100만명 이상의 국내외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지만 정작 원주민들은 속속 집을 버리고 떠나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도 5~6명 뿐이다.

아직 남아 있는 주민들도 바리케이드를 치고 한옥 보존 철폐 운동까지 불사하겠다는 것을 보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북촌은 종로구 가회동과 계동, 삼청동, 원서동, 재동, 팔판동 일대 인구 8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다. 1980년대부터 행정주도 한옥보존정책으로 주민들 간 보존이냐 개발이냐를 놓고 갈등이 있었지만 지난 2010년 1월 서울시가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면서 한옥관리규제와 용도규제로 묶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제를 불러온 것은 지구단위계획 지정 이후 후속 관리 대책의 부재였다. 서울시는 당시 북촌을 14개의 지구단위계획 구역으로 쪼개며 680억원 규모의 개발 계획 청사진을 제시했다.

기본적인 편의시설과 가로환경, 전신주 지중화, 담장, 지하주차장 등 수십 가지에 이르지만 지금까지 이뤄진 것은 전무했다. 커져야 할 관련 담당 부서는 반으로 줄기까지 했다.

더 큰 문제는 지난 5년 북촌이 관광1번지로 급부상 하면서 전통 ‘주거지역’인지 아니면 ‘관광지역’인지 구분이 모호해 졌다는 점이다.

오히려 마을을 14개 구역으로 조각조각 쪼개다 보니 한옥지역과 비한옥지역의 정책 차이로 주민들 간 상대적 박탈감만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 서울시도 담당부서를 신설하고 실태조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 수백만의 관광객이 찾고 있는 북촌의 현실을 볼 때 실태조사를 통한 단순 정비만으로 해결점을 찾기엔 이미 늦은 듯 하다.

이제는 북촌을 전통 ‘주거지역’으로 회복을 하든지 아니면 아예 ‘관광지역’으로 지정해 주민들이 한옥을 관광산업에 투입할 수 있도록 시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 주민이 없는 마을은 결국 붕괴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