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일보]춘천에서 활동하는 시인 중에 심순덕이라는 분이 있다.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시인이었다.
어느 날 작자미상의 시 한편이 독자들이 사랑을 받으면서 인터넷에 떠돌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작자에 대한 관심이 일고 결국 심순덕이라는 시인의 이름이 회자되기 시작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시가 바로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한편의 서정시였고 이제는 해마다 오월이면 자연스러울 정도로 이 시가 생각나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처럼 나도 공감하였기 때문이리라. 담담하지만 과거 우리들 엄마의 모습을 오롯이 담고 있는, 또는 눈에 보일 듯이 이제는 더 이상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듯 이 시는 우리의 가슴에 모두의 엄마를 새기고 있다.
어쩌면 그때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 그리고 엄마는 당연히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들이 기실 사랑이 없으면, 제 자식을 위해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참으로 어려운 일들임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내 어렸던 시절 우리네 엄마는 공통적으로 꽁치를 구우면 살코기보다는 꽁치대가리와 꼬리를 좋아했다. 우리네 엄마는 누구나 김치줄기보다는 김치 꽁다리를 좋아했다. 우리네 엄마는 누구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보다 누룽지를 좋아했다.
내 새끼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 일념하나로 엄마는 엄마를 없애고 살아 왔다. 자식을 향한 무한사랑의 결정체가 바로 우리네 엄마들이었다. 그때 우리들의 아버지는 왜 그리도 엄하고, 무섭고, 엄마에게 무심 무정했던지...
이런 엄마를 보면서 우리는 늘 마음 든든한 내편이 있다 생각하고 살았으며, 장난을 치고 말썽을 부리기는 했어도 마음속에 증오와 질투와 이기심을 키우지는 않았다. 우리엄마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착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 작은 한마디였지만 오늘 이만한 진리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지난날의 내 엄마를 생각하다 문득 눈을 돌려 요즈음 엄마를 바라본다. 물론 그네들 역시 그들의 시대에 걸맞게 아이들을 키우고 있으리라.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해도 엄마는 엄마여야 한다. 물론 제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아니 그 사랑이 어쩌면 너무 무분별하게 넘치는 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다. 해서 아이를 기르는 게 아니라 마치 사육을 한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엄마의 아바타가 되어 가고, 그만큼 아이들의 심성도 황폐해져 가고 있는 느낌이다. 엄마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IT의 발달에 따라 1인 1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이제는 누구도 제가 간절하게 필요하지 않으면 남과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엄마에게 칭얼대면 어느새 아이의 손에는 게임어플이나 만화가 실행되는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다. 그러는 와중에 아이들은 엄마가 못다 이룬 학문에의 한풀이라도 하듯이 공부를 강요하고 있다.
심지어 공중장소에서 아이가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잘못된 행동을 해도 제 아이를 나무라기보다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을 턱이 없고 자라서도 사회에 부적응하게 되면 그 화살은 결국 부모의 가슴을 향하게 되면서 오늘날 같은 패륜적 범죄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어찌되었든 엄마는 위대하다. 신은 하늘에 천사가 부족하여 엄마를 내려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위대함을 망각하는 엄마들이 가끔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일이 있어서 문제가 되는 건 아닐까?
엄마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 오월에 우리네 엄마와 오늘의 엄마를 되돌아 보며 나를 생각한다.
오월이나 되어야 내 엄마를 생각하는 무심한 아들이지만 이제는 ‘엄마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 아주 패륜은 아니지 않은가 하고. (동대문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