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장칼럼/ 5월의 마지막 주말 밤, 근대 정동을 만나자
단체장칼럼/ 5월의 마지막 주말 밤, 근대 정동을 만나자
  • 시정일보
  • 승인 2016.05.2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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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식 중구청장
   
최창식 중구청장

[시정일보] 우리나라에 커피가 전래된 시기는 정확치 않다. 다만 미국인 퍼시벌 로웰이 저술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 를 보면 커피에 관한 대목이 있다. 왕실 초청으로 조선에 온 로웰이 1884년 고위관리의 별장에 갔는데 당시 조선의 최신 유행품인 커피를 대접받았다는 내용이다.

커피애호가였던 고종이 처음 커피를 맛본 것이 1896년 아관파천 후 러시아공사관에 머물 때였으니 저 책에 따르자면 12년 후의 일이다. 어쨌든 고종은 실록 등에서 보증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마니아다.

고종에게 처음으로 커피를 올린 이는 러시아공사 베베르의 처형이었던 마리 앙트와네트 손탁이다. 황실전례관으로 왕실의 양식조리와 외빈접대를 맡았던 그녀에게 고종은 정동에 있는 한옥 한 채를 하사했다.

이후 그 집은 2층 양옥 건물로 업그레이드되니 바로 손탁호텔이다. 여기는 열강들의 외교 각축장이자 조선 내 양풍(洋風)의 진원지였다. 미국인들의 사교모임인 '정동구락부' 가 열렸고 러일전쟁을 취재하던 마크 트웨인, 젊은 시절의 윈스턴 처칠, 을사늑약을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도 손탁호텔에 묵었다.

손탁호텔 1층에는 전문 커피숍이 있었다. 고종은 왕세자였던 순종과 함께 이 커피숍에서 만들어 온 커피를 덕수궁 정관헌에서 즐기곤 했다.

하지만 고종은 그렇게나 좋아하던 커피 때문에 죽을 뻔한 일도 있다. 공금을 착복해 유배를 간 김홍륙이 앙심을 품고 고종을 죽이고자 커피에 독을 탄 것. 마니아답게 여러 커피 맛을 잘 알고 있던 고종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더 마시지 않았지만 순종은 독이 든 커피를 마시고 피를 토했다고 한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자식을 갖지 못할 만큼 순종은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

한편 1909년 손탁이 프랑스로 귀국하자 손탁호텔은 경영난에 시달리다가 1917년 이화학당에 매각되고 1922년에 철거됐다. 그 자리에는 이화학당 100주년 기념관이 들어서있다.

지금은 손탁호텔의 흔적을 표지석으로만 볼 수 있으나 고종이 좋아했던 커피의 향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5월27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봄 정동야행을 통해서다.

‘역사를 품고 밤을 누비다' 를 주제로 한 이번 정동야행은 서양 신문물의 도입지였던 1900년대 전후 정동의 모습을 재현한 프로그램들을 선보인다.

고종 때의 방식대로 커피콩을 절구에 갈아 커피를 만들고‘덜덜불 골목’을 체험할 수 있다. 덜덜불은 1901년 덕수궁에 설치한 백열전구를 지칭한 것으로 이를 밝히기 위해 들여놓은 발전기가 덜덜거리며 요란하게 돌아간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그 탓에 정동길은 덜덜골목이란 별명이 생겼다.

또 요즘 청소년들은 생소할 모르스 부호로 전신을 주고받고 과거 신문사에서 사용한 납활자를 이용해 신문을 제작하고 조선후기 조폐공사 역할을 한 전환국에서 썼다는 압인기로 주화를 만들어 볼 수 있다.

이번 봄 정동야행은 근대사의 흔적을 간직한 정동 일대 29곳의 역사문화시설들이 뜻을 모아 밤 10시까지 시민들을 맞이한다. 조선과 수교한 뒤 처음으로 자리 잡은 옛 미국공사관 겸 영빈관이 있는 주한미국대사관저와 19세기에 지어 근대적 건축미가 물씬 풍기는 영국대사관도 일부 개방한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과 평소에는 열지 않는 성가수녀원을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이렇게 정동야행에 참여한 시설을 방문하고 받아 온 스탬프가 7개 이상이면 정동 주변 음식점과 중구 내 호텔에서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으니 나만의 탐방 코스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
지난해 첫 정동야행에서 사람들은 색다른 정동의 밤 모습에 열광했다. 그 덕에 무려 19만명이 넘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정동을 찾았다. 다가오는 정동야행에선 정동의 어떤 모습에 흠뻑 빠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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