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뉴타운’ 제2의 천호동시대 예고
‘천호뉴타운’ 제2의 천호동시대 예고
  • 시정일보
  • 승인 2005.07.0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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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우 강동구청장
천호동은 1963년 1월 경기도 광주군에서 서울시로 편입되면서 ‘수천호가 살만한 땅’이라하여 천호동(千戶洞)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한강 상류지역인 천호동은 6000년 전부터 신석기인의 삶의 터전이었던 만큼 물 맑고 공기맑아 사람살기 좋은 고장으로 손색이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70여년전인 1936년에 광진교가 건설됐다. 배가 아니면 통행이 막막했던 천호동이 광진교 개통으로 숨통이 트였다. 천호동에서 서울가는 길이 뱃길에서 육로로 바뀌면서 천호구사거리는 광주, 하남, 이천, 여주 등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이때부터 천호동은 자연스럽게 재래시장이 형성되는 등 상권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천호동은 서울로 들어오는 관문

‘천호동 423번지’는 서울도심의 윤락가 지역이 재개발됨에 따라 그당시 변두리 지역이었던 천호동 구사거리로 밀려들어 80년대말까지 전성기를 구가했고, 90년대 후반까지 200여개의 업소가 난립하면서 불명예스럽게도 윤락가의 대명사로 불리게 됐다. 그러다보니 천호동 423번지 이미지가 강해 천호동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천호동은 광진교 개통이후 동부서울의 관문으로, 교통의 요충지로 꾸준한 성장을 해왔다.
지하철 5, 8호선이 개통되면서 천호대로를 중심으로 백화점, 할인점 등 대형 유통업체가 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반면 재래시장이 상권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천호동 423번지’도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제정 등 정부의 강력한 성매매방지 종합대책의 추진으로 지금은 불과 몇 업소만 자리를 지킬 뿐이다. 변화를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천호동은 변화의 중심에 있다

동부서울의 교통 상업의 중심이며 한강상류 청정지역에 위치하고 있지만, 도시계획시설이 미비하고 낙후한 천호동을 어떻게 변모시킬 것인가 구청장으로서 오랜시간 고민에 빠졌다. 천호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곧 닥쳐올 미래를 상상하며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과거 천호동이 노란색이었다면 환경친화적인 녹색으로 바꾸겠다는 각오로 ‘천호뉴타운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우선 천호구사거리와 천호대로가 만나는 신사거리를 잇는 300m구간을 일방통행으로 바꾸고 사람이 중심인 ‘로데오거리’를 만들었다. 거리의 풍경이 달라졌으며, 지나는 구민의 밝은 미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천호동이 변화하는 출발점에 로데오거리가 있다.
이러한 노력의 대가로 최근 한강변 청정지역인 천호2, 4동 지역 약 12만4000평에 ‘천호뉴타운지구 개발기본계획’이 서울시로부터 승인됐다. 윤락가와 재래시장 지역 일대가 선도사업으로 선정돼 개발에 착수함으로써 동부서울의 쇼핑과 문화의 명소로 변신을 추진하고 있어 ‘제2의 천호동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제2의 천호동시대 예고

이 지역이 개발되면 그동안 감추고 싶었던 ‘천호동 423번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쾌적하고 활기찬 도시환경이 조성돼 경쟁력 있는 도시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으로 나는 확신하고 있다. 천호뉴타운 사업을 원활히 시행하기 위해 강동구에서는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사업시행절차를 간소화하며, 예산을 지원하는 등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 주민들의 협조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만큼 주민의 이해를 얻는 일에도 구청이 앞장서고 있다. 그만큼 이 사업의 성패가 강동구 발전의 중요한 키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강동구는 천호동의 발전, 강동의 역사를 다시 쓴다는 결연한 의지로 난관을 헤쳐나가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정어린 마음으로 강동구의 발전을 기원하는 구민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바로 그들이 발전의 원동력이며, 주인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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