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570돌 한글날을 맞아
기자수첩/ 570돌 한글날을 맞아
  • 이승열
  • 승인 2016.10.06 16:08
  • 댓글 0

   
▲ 이승열 기자

[시정일보 이승열 기자]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언해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라의 말이 중국과 서로 달라 한자로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니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할 바가 있어도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다”

이 서문에는 세종의 애민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 그 애민정신은 “좀 더 쉬운 말과 쉬운 글자로 편안하게 서로의 뜻을 전하라”는 깊은 뜻에서 우러나온다. 즉 ‘말과 글자를 쓰는 데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한글 창제의 기본 정신이다.

하지만 당시 최만리 등 많은 사대부들이 반대 상소를 올렸다. “한자와 이질적인 소리글자를 만드는 것은 중국에 부끄러운 일이며, 한자와 다른 글자를 가진 몽고, 서하, 여진, 일본, 서번 등은 하나 같이 오랑캐들이니,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것은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일”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요즘에도 이렇게 ‘대국’(大國)을 섬기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가끔 패션잡지를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은 기사들이 머리를 지끈지끈 아프게 한다. “스마트한 패셔니스타가 되고 싶다면 캘빈클라인의 스테디셀러인 스위스메이드 워치 ‘미니멀’로 TPO에 맞게 스타일링할 것. 캘빈클라인만의 아이덴티티를 담은 고급스럽고 시크한 룩을 완성해 준다.”

공공기관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었다. “이번 프로그램은 경복궁 야간개방 기간 동안 문화창조융합벨트가 특별히 기획·제작해 만든 대표적인 융·복합 콘텐츠로서, 궁 안의 영제교와 경회루를 활용한 프로젝션 매핑과 미디어 파사드 등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아름다운 미디어 공연으로 구성돼 있다.” 아무래도 이 문장을 이해하려면 해석이 먼저 필요할 것 같다.

공공기관은 보도자료를 작성하거나 사업 이름을 지을 때 외래어나 한자어를 쉬운 말로 순화하려고 앞장서 노력해야 한다. ‘콘퍼런스’는 ‘회의’ 또는 ‘회담’으로, ‘가이드라인’은 ‘방침’이나 ‘지침’으로, ‘페스티벌’은 ‘축제’로, ‘제고(提高)하다’는 ‘높이다’로, ‘식재(植栽)하다’는 ‘심다’로 바꿔쓰면 된다.

570돌 한글날을 맞아 기자는,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더 깊은 사랑을 다짐해 본다. 그것은 한글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진 자로서의 도리다. 그리고 한자어와 외래어를 단 한 단어도 쓰지 않고 이런 작품을 쓴 분에 대한 존경심이기도 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