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선택의 기로에 선 대한민국호
<사설>선택의 기로에 선 대한민국호
  • 시정일보
  • 승인 2016.11.1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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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여럿 가운데서 필요한 것을 골라 뽑는 것이 선택이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없어져야 고민은 비로소 끝난다. 선택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미련을 끊어 내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단칼에 끊어내지 못하면 평생 그 고민의 미로에 빠져 나오지 못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그러나 국민은 그를 잘못 선택했다고 다시 거두겠다고 한다. 국민은 박 대통령을 선택했으나 박 대통령은 국민을 선택하지 않고 최순실이라는 측근 한 사람을 선택했다고 실망에서 분노로 달려간다. 국민은 아름다운 선택을 하지 못한 대통령에 실망이 크다. 비단 박 대통령만도 아니다. 이전의 대통령도 국민의 선택을 저버린 행동들에 실망을 경험했다.

선택은 혼자서 하는 것이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폴리 토인비는 “대처는 혼자 힘으로 옥스퍼드에 갔고 최고의 리더가 됐기 때문에 강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후광을 받은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의 후광과 우호적인 정당의 지지로 된 것 만큼 대처처럼 하면 아버지의 독재를 연상시킨다. 특히 기회의 균등문제에 신경 써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타냐 뵈르첼 베르린 자유대 교수는 독일의 “메르켈의 장점은 들어주고 설득하는 소통정치에 있다”며 “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도 동북아 패권경쟁, 북핵, 남북통일 등 크고 복잡한 이슈가 많으니 목표를 멀리 보면서 이견을 포용하고 갈등을 조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요약하면 소통하고 적극적인 국력결집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소통은 단 문고리 삼인방과 최순실에 의한 소통이 전부였다. 그 소통은 자신의 의견이 아닌 최순실 강남아줌마의 선택이 국정의 논단으로 이어졌다.

우리 국민은 2006년 월드컵을 통해 히딩크라는 축구지도자의 신선한 선택을 경험했다. 그는 한국축구 4강 신화를 만들었다. 국민은 그를 탁월한 리더로 기억한다. 월드컵이 열린 6월은 우리가 마치 ‘히딩크 공화국’의 행복한 백성이라도 된 듯한 느낌으로 살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그를 우리는 축구 감독을 넘어 능력 있는 경영자로도 해석하기도 했다. 그것은 그가 지난 월드컵에서 단 한 차례도 승리를 얻지 못했던 한국 축구를 짧은 기간에 세계축구의 중심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바른 선택’ 부재라는 정치권에 대한 비판도 깔려있었다. 또 다시 그는 선택이란 이런 것이라는 본보기를 보인다. 이른바 ‘끼리끼리 인맥’ 한국적 병폐를 완전히 털어버린 ‘실력중심’의 선수 기용이다. 히딩크는 한국국민의 열화 같은 박수를 받는다. 국가는 히딩크에게 명예 주민등록증까지 부여했다. 한국에서 축구지도자로 계속 남아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히딩크는 국민의 잔류요구를 뿌리치고 ‘떠났다’. 그의 선택의 뒷모습은 5천만 국민의 가슴에 여운을 남겼다. 결국 정상에 있을 때 떠나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는 보여 줬다.

이정현 대표는 히딩크의 선택을 돌아보기 바란다. 촛불이란 횃불이 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소통은 선택을 위한 과정이다. 소통은 간절해야만 박 대통령의 말처럼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을가 싶다. 선택을 할 때는 몸을 낮춰야 한다. 모든 것을 버릴 때 선택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