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16년, 눈먼 자들의 도시
사설/ 2016년, 눈먼 자들의 도시
  • 시정일보
  • 승인 2016.12.2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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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2016년의 끝자락. 시정신문이 오늘의 한국을 바라보는 사설의 총정리는 노벨상 수상자 주제 사라마구가 쓴 장편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의 제목을 빌린다.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은유를 통해 현대사회에 대한 날선 비판을 모두 담아내는 작품이다. 2016년의 한국 사회는 전대미문, 정치라는 시험대에 올라섰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정치의 이기심을 들키고 만다. 수습하려는 여야 리더십마저도 시민의 촛불을 통해 자아성찰이라는 무서운 진노를 맛보았다. 루소는 일찍이 무형의 교육을 주장한바 있다. 보이지 않는 교육은 다가오는 미래로 걸어감을 말한다. 한국의 화이트칼라들은 유, 무형의 교육자들이다. 한 정부를 이끄는 지도자는 작고, 큰 나라를 비교치 않아도 600명 내외라는 학자의 주장이다. 한국의 600여명 지도자가 보여준 태도는 <눈먼 자들의 도시>의 전형이다. 거짓말도 너무나 태연하게 한다. 역사는 2016년을 <거짓말의 해>라고 할 것이다. 청문회에 비춰진 거룩하지 못한 지도자들은 어둠의 빛, 결정체였다. 그들, 거짓말에는 한 치의 오차와 흔들림이 없었다. 거짓도 거룩하게 보일 수 있다는 희화까지 낳고 말았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으며 조직을 통해 이뤄야 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조직이 거짓말을 하면 견제에 의하여 거짓을 몰아내는 것이 민주질서의 충분조건이다. 견제는 통제가 되고, 건강한 사회로 거듭난다.

언제였을까. 초등학교에서는 회장과 반장을 뽑는 데 물질과 허구의 공약이 동원된다는 지적의 뉴스를 접했다. 이 또한 어른들이 만들어낸 무형의 교육, 고장 난 초등학교의 교실 시계였다. 2016년의 청문, 국회가 보여준 것은 장단점의 명암은 있다. 그러나 시정신문 사설의 펜은 보다 냉정하고 미래를 지향한다. 오늘의 10대와 20대에게는 뼈아픈 교육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말았다. 어떠한 경우에도 ‘얼굴빛 변하지 말고 거짓말하라. 말소리는 지적이며 보다 낮게 어둠 같지 않게 거짓말하라’는 지상파, 공중파까지 동원하는 생중계 교육장이 됐다. 문신을 지우듯 거짓의 시대를 지우려면 그 재정적 손실은 환산이 가능할까 우려를 본다.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와닿는 글귀가 있다.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마치 대한민국의 촛불 광장을 향해 던지는 대사 같다.

법학을 전공하는 교수는 청문회는 보지 않고 박진영이 심사하는 K팝을 열심히 본다고 한다. K팝의 심사가 너무나 공정하고 심사하는 평이 법학의 법리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사법부, 교육, 경제, 정치, 종교계가 K팝 심사의 질서의 논리를 배우는 사회라면 정상으로 가동되는 것인가. 2016년의 한국사회를 결산하는 시정신문 사설의 고뇌는 오늘의 고뇌보다는 미래를 향한 고뇌가 더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