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장칼럼/앙시앙 레짐 해체 없이 혁명이라고?
단체장칼럼/앙시앙 레짐 해체 없이 혁명이라고?
  • 시정일보
  • 승인 2017.02.02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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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필 관악구청장
   
유종필 관악구청장

[시정일보]촛불민심은 가히 혁명적이다. 국회도 혁명적 상황임을 인정한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재적의원 78%의 탄핵 찬성표가 나왔겠는가. 프랑스 혁명 때 앙시앙 레짐(구 체제) 해체 없이 제왕을 몰아낸 자리에 다른 제왕을 앉혔다면 역사는 그것을 혁명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 대통령 탄핵만 하고 낡은 체제의 근간인 헌법을 온존시킨 채 또 다시 제왕적 대통령을 뽑자고 하는 것은 수구적 태도이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지금의 혁명적 상황에 대한 감수성의 빈곤일 따름이다. 4.19와 5.16, 5.18, 6월항쟁과 같은 격변기에 어김없이 개헌을 했던 전례에 비추어도 개헌은 자연스런 수순이다.

개헌을 할 때 권력구조만 변경해서는 의미가 반감된다. 그동안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를 비롯하여 광역·기초의원, 학계 등에서 꾸준히 제기해온 자치분권형 헌법을 이번 기회에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현행 헌법은 지방자치가 시행되기 전 1987년산이기 때문에 현 자치분권 시대에는 전혀 맞지 않다. 우선 양적인 면에서 2개 조항에 불과하고, 내용도 지극히 형식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전반적으로 지나친 중앙집권주의로 일관하고 있어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다.

프랑스는 헌법 1조 1항에 ‘프랑스는 지방분권으로 이루어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지방분권을 국가의 기본원리로 천명한 것이다. 그리고 지방자치 관련 12개 조항을 두고 있다. 스웨덴은 헌법에 해당하는 스웨덴기본법의 하나인 정부조직법 1조에 스웨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대의제와 지방자치를 명시하고 있다. 지방자치를 대의제와 동격에 놓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대한민국이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가운영 시스템을 비효율적인 중앙집권에서 실질적 지방자치로 전면 전환해야 한다. 지방이 블루오션 지대이다. 지방에 길이 있다. 동네 골목에서 싹튼 새로운 기운이 나라 전체에 확산되도록 해야 한다.

민선6기에 이른 지금 지방자치단체들은 특색을 살린 지역발전을 위해 뛰고 있지만 가장 큰 걸림돌이 재정 문제이다. 국가 전체 세수입 가운데 지방세의 비중이 20% 남짓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중앙정부와 상급 자치단체에 재원을 의존하다보니 창의적 사업을 펴기 힘들다.

관악구청장을 6년여 하면서, 같은 서울이라지만 강남권은 물론이고 언뜻 비슷하게 보이는 인접 자치구와도 주민들의 요구와 역점사업이 상이함을 많이 경험했다.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개성 있는 사업을 마음껏 전개하기 위해서는 자주재원 확충이 필수적이다. 지방세 비중을 담당사무 비중에 맞게 40% 정도로 높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50% 안팎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치입법권과 자주재정 등 지방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지방분권형 헌법을 갖추는 게 우선이다. 개헌과 함께 국세기본법과 지방세기본법 등 관련 세법을 개정하여 국세와 지방세 간 세목 조정을 통해 자주재정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자치분권형 개헌 없이 명실상부한 지방자치의 꽃을 피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어느 대통령이 자신의 수중에 있는 재원을 내주겠는가. 설사 대통령이 시도하더라도 어느 중앙정부의 관료가 순순히 따르겠는가. 국회도 그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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