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폐지 줍는 노인들
시정칼럼>폐지 줍는 노인들
  • 시정일보
  • 승인 2017.02.09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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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전국에 폐지를 주워 생계를 꾸리는 노인은 모두 175만명에 달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열악한 노인 일자리 현실을 들려준다.

삶의 기반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헌 옷 따위나 파지, 고철을 주워 넝마주이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던 시절이 있었다. 이는 특별한 기술이 없는 밑바닥 사람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생계형 수단 이었으나 빠른 경제 성장으로 차츰 넝마주이는 사라지고 고물상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더불어 시대가 변하며 넝마주이란 말은 사라졌지만, 언젠가부터 도시빈곤층을 중심으로 신 넝마주이가 우리 사회에 다시 등장했다.

실로 심각한 문제는 노인빈곤층이 신 넝마주이로 전락해 과거 암울했던 시대처럼 파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서글픈 세상이 되어 버렸다.

누구나 길을 걷다가 보면 폐지 줍는 노인들을 종종 마주치게 된다.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겨워 보이는 그들의 굽은 허리, 깡마른 팔과 다리로 폐지 리어카를 끌고 가는 장면을 보노라면 달려가 밀어드리고 싶어진다. 어두운 밤에 리어카에 실은 폐지와 고철은 노인의 열쇠보다 높다. 이 정도 폐지를 팔고 받은 돈은 하루 종일 7, 8000원이 고작, 하지만 노인은 환한 표정으로 돈을 받아 쥔다.

기운이 펄펄 넘치는 태양도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새벽, 남들보다 라면 박스 한 개, 신문지 한 장이라도 더 주우려면 노인들은 부지런히 골목 쓰레기통과 셔터 내려진 가게 앞을 뒤지고 다녀야 한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주운 폐지를 '고물상'이라고 흔히 부르는 재활용센터에 넘기고 손에 쥐는 돈은 그야말로 푼돈 수준이다. 노인들의 고된 노동을 생각하면 폐지와 고철 값이라도 좀 올려주면 좋으련만, 자꾸 내려가니 수레는 무거워지고 지갑에 들어오는 돈은 가벼워져만 간다.

그런데 교통사고에 노출돼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보통 폐지를 줍는 노인들은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 차도를 다니거나 무단횡단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야간 및 새벽시간대 주로 활동하여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아 교통사고에 쉽게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자체에서는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교통안전을 위해 야광 반사 끈 등을 부착케 하여 사고 예방을 배려해야 한다.

게다가 지난 2013년 <폐기물관리법>이 개정되면서 도심에 있던 재활용품 수집업체들이 설 자리를 잃어 대도시에는 폐지 팔 곳까지 줄어들고 있다. 노인들이 폐지를 수거하면서 도시 환경에 이바지하는 바가 크고 자원 재활용에도 좋은 효과를 끼치고 있는 만큼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일하는 노인의 경우 우울증이 나타나는 비율이 18.7%, 일하지 않는 노인의 경우 우울증 비율이 33%”라며 일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자존감을 높이고 보람 있게 일할 수 있는 노동여건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해야 한다.

폐지 줍는 노인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우울한 자화상 중의 하나이다. 무상 복지가 판을 치고 각종 수당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을 낯부끄럽게 만드는 모습이다. 이 모습을 정지하지 않고는 복지국가를 말할 수 없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모차 위에 폐지를 주어 담는 노인들은 없다.

생계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한 노인들은 새벽이슬 맞으며 오늘도 위험한 거리를 헤매고 있다. 취약한 사회안전망, 낮은 복지 수준과 복지사각지대를 고려할 때 쉬이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 고령사회 속 경제적으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노인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때이다.

노인 빈곤은 단지 노인들, 저소득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언제 잘릴 지 모르는 직장을 다니며 불안감에 시달리는 중산층, 그런 직장마저 얻지 못해 절망에 빠져 있는 청년층 모두의 문제이다. ‘폐지 줍는 노인’은 ‘헬 조선 세대’의 미래일지 모른다. 현재의 폐지 줍는 노인도, 미래의 폐지 줍는 노인도 모두 방치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