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걷기 좋은 도시로의 재생
<기자수첩>걷기 좋은 도시로의 재생
  • 이승열
  • 승인 2017.02.1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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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걷기’[步行]는 어느 틈에 나의 가장 중요한 취미 중 하나가 됐다. 매일 일만(一萬) 보를 걷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시간을 내 걷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이다.(그런데 왜 살은 안 빠지지?) 2년 전 서울둘레길과 한양도성길을 완주한 경험이 그 시작이 된 듯하다.

나의 걷기는 운동보다는 유람(遊覽)에 가깝다.(그니깐 살이 안 빠지지) 이러한 걷기가 즐거우려면 그 길이 자연경관이 아름답거나, 문화유적이 있거나, 가슴에 와 닿는 삶의 공간들(이를테면 오래된 집이나 가게들)이 산재해 있어야 한다. 서울 사대문 안 도심에는 이러한 조건들을 만족하는 좋은 길이 많다.

걷기에 가장 좋지 않은 길은 거대 아파트단지 주변이다. 나는 도심 빌딩 뒷골목보다 아파트 주변 삭막한 공간에서 더욱 공포심을 느낀다. 그 길에는 걷는 사람이 없다. 위에서 말한 걷기 좋은 조건들을 어느 하나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걷기’의 대척점에는 ‘자동차’가 있다. 아파트는 자동차 중심의 주거공간이다. 우리는 옛날에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았다. 그리고 마당을 나서면 이웃들과 공유공간인 골목길이 있었다. 마당과 골목길을 중심으로 마을을 걸어 다니는 것이 우리의 삶의 방식이었다. 아파트는 거대한 주차장이 마당과 골목길을 대신한다. 먹을 것을 사려고 해도 가까운 전방[전ː빵]이나 시장에 걸어가지 않고 자동차를 타고 대형마트로 나간다. 하지만 마당과 골목길, 그리고 걷기에 대한 근원적인 욕망은 사라지지 않아서, ‘걷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멀리 공원으로 간다. 때문에 근거리에 공원이나 산책로를 만들어주는 것이 지자체의 중요한 임무가 됐다.

‘도시재생’이 시대의 화두다. ‘재생’이라는 말의 대척점에는 ‘재개발(재건축)’이 있다. 재개발이 있던 것을 깡그리 밀어버리는 것을 말한다면, 재생은 그대로 놔두고 손보는 것을 뜻한다. 아파트·자동차에 길들여진 삶과 거대 건설자본은 재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따라서 한번 아파트가 지어진 공간에서는 앞으로도 쭉 재개발만이 계속될 것이다. 그것이 아파트의 비극이다. 재생은 자동차보다는 걷기와 어울린다. 사람들이 걷기 시작하면 없던 것들이 봄날 새순 나듯 새록새록 피어난다. 사람들이 골목길로 나오고 작은 가게들이 들어서고 지역이 활기를 띠게 된다. 경의선 지하화 후 조성돼 서울의 명물이 된 경의선 숲길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시가 ‘서울로 7017’(옛 서울역 고가)과 연결되는 퇴계로를 보행자 중심의 길로 바꾸는 공사를 시작한다고 한다. 4월 예정인 ‘서울로 7017’의 개통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공사 시행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서울로 7017’이지만, 자동차를 배제한 ‘걷기 중심’ 도시재생이라는 측면에서는 변함없이 지지를 보내고 싶다. 이 길이 열리면 나는 먼저 퇴계로에서 만리동 쪽으로 걸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