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앞/중용은 치우치거나 모자람없는 평상의 이치
시청앞/중용은 치우치거나 모자람없는 평상의 이치
  • 시정일보
  • 승인 2017.02.2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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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仲尼曰(중니왈) 君子中庸(군자중용)이요 小人反中庸(소인반중용)이라.

이 말은 중용에 나오는 말로써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중용을 몸소 실천하며 소인은 중용을 어긴다’라는 의미이다.

예로부터 중용의 의미에 대한 논의는 무수히 있어 왔고 그 말들이 또한 실로 복잡다단해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러나 중용의 의미는 사실상 간단하다. 단지 그 의미에 대한 해석의 시각과 실천방법에 대한 견해의 차로 인해 무수하고 복잡다단한 논의를 낳았던 것이다. 朱熹(주희)는 ‘중용은 치우치거나 기대지 않고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평상의 이치’라고 정의했다. 혹자는 庸(용)을 바뀌지 않는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중용은 치우치거나 기대지 않고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바뀌지 않는 이치이다. 모두 맞는 말이다. 사실 중용의 핵심은 中(중)에 있으며 庸(용)은 중의 평상성 또는 항상성을 말한 것이다. 즉 중이 갖는 최고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윤리적 사상적으로 체계화한 것이 중용의 사상이다. 중국에서 중용사상이 성립된 것은 아주 오래전이며 사실 시대와 학파를 막론하고 그 근저를 흐르는 사상이 중용사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중용의 실천이다. 어떻게 덕을 올바르게 실현하는가가 문제이다.

작금에 들어 국민의당 대선 주자인 안철수 전 대표는 “정치인은 제도권 내에서 문제를 풀도록 노력해야 한다. 헌재 판단을 기다려 보는 것이 맞다”고 했다. 그의 지지층 성향을 따지자면 촛불 쪽에 훨씬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도 촛불 집회에 발길을 끊는 선택을 했다. 여전히 경쟁하듯 촛불 시위에 나오는 다른 주자와는 다른 모습이다. 안 전 대표는 “정치인은 소신대로 행동하고 평가받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우리는 정치인 안철수를 다시 보게 된다.

작금의 태극기 집회에서 한 주최 측 대표는 “지금까지는 평화 투쟁을 고수했지만 완전히 다른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고 했다. 촛불 집회에서는 “탄핵이 안 되면 혁명밖에 없다”는 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양쪽 다 헌재가 자신들 뜻과 다른 결론을 내리면 승복하지 않고 무슨 폭동이나 일으킬 듯이 위협하고 있다.

양측의 격앙된 감정이나 기세를 보면 빈말만은 아닌 것 같다. 실현 여부를 떠나서 이런 말들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朱熹(주희)가 ‘중용은 치우치거나 기대지 않고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평상의 이치’라고 정의한 중용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며 정치인들의 처신을 예의주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