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사교육비 18조원 시대, 우리교육을 보다
시정칼럼/사교육비 18조원 시대, 우리교육을 보다
  • 김영섭 논설위원
  • 승인 2017.03.1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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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섭 논설위원
   
 

[시정일보]우리니라의 교육열은 가히 세계적이다. 아니 세계최고라고 한다. 과거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던 일본을 앞지른 지 오래되었다. 그리고 그 높은 교육열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결코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보다는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더라도 백번 맞는 말이다.

과거에는 교육의 기회 자체가 부족했다. 전쟁과 가난 때문에 또는 전통적 사고방식의 굴레 때문에 초등교육조차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로 인해 가슴에 커다란 한을 안고 살아가야 했던 부모님들은 내 자식에게만큼은 그런 한을 심어주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이를 악물고 일을 했고 그 결과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세계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높은 교육열을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바로 베이비부머 이후 일부 엄마들의 의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사교육의 비중이 매우 크다고 한다. 오죽하면 사교육 때문에 공교육이 무너진다고 난리를 치겠는가?

실제로 우리나라 청소년은 물론이고 이제는 초등학생 그리고 더 나아가 유치원생 이전부터 선행학습이니 해서 정규과정 이전에 이미 교육현장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청소년들의 생활은 어떤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원에다 그들의 꽃같이 활달한 시간을 가두고 있지 않은가. 물론 이런 현상이 벌어진 데는 입시위주의 주입식교육 행태를 바꾸지 못하는 정부의 책임이 일차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무조건 많이 가르치면 다소화해내고 1등을 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엄마들의 의식상태도 크게 한몫하고 있다는 소리도 높다.

물론 내 아이가 다른 아이에 비해 뒤떨어지는 것을 좋아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내 아이의 적성이나 성향, 특기 등에 대한 고려 없이 그저 다른 아이가 하는 만큼 무조건 똑같이 교육시킴으로서 그들보다 앞서기를 바란다는 것은 무언가 크나큰 착각 속에 빠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실제로 미국에 유학한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중등학교까지는 최상의 성적을 유지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의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우리아이들이 대학교에 가면 현지학생보다 학습적 성취도가 떨어진다는 분석은 무얼 의미하는가. 미국에서도 한국의 엄마들은 바뀌지 않고 우리방식대로 사교육을 시켜서라도 아이에게 1등을 닦달하고 공부 공부를 강요하니 그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그러나 대학교육은 시스템 자체가 다르다. 대학공부를 위해서 학원에 다닐 수도 없는 것이다. 엄마의 잔소리에 따라 주입식으로 할 수 있는 교육도 아니다. 중고등학교처럼 문제를 달달 외워서 되는 것도 아니다. 자유로운 분위기와 창의적인 생각, 토론을 통한 문제의 도출과 해결 등 다양한 접근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여기에서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되고 혼란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한국적 사고방식의 교육이 한계를 드러내는 지점이며 엄마들의 강요가 얼마나 허망한가를 깨닫는 지점인 것이다. 다는 아니겠지만 이는 아이의 미래를 담보로 엄마의 욕구를 해소하려는 심리로 보는 견해들도 있다.

결국 이런 폐해는 우리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로 나타나고 2016년/2017년도 세계대학평가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라는 서울대도 겨우 72위 정도 라는 결과를 보인 것이다. 물론 평가기관 나름의 기준에 의한 것이다.

모두 1등 하면 꼴찌는 누가 하느냐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이 사회는 매우 다양해졌고 그만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요구하고 있다. 결과론적으로 입시위주 정책과 학벌, 고학력 선호주의, 그리고 엄마들의 대리만족 욕구가 빚어낸 총체적 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

하나 다행인 것은 근자에 이르러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이런 사교육의 폐해를 인지하고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들의 그릇된 욕망과 교육관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지난해 우리나라 사교육비가 18조원에 이른다는 보도에는 아연할 뿐이다.

그래도 희망을 거는 건 다수의 현명한 젊은 엄마들이 있기 때문이다. (동대문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