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문라이트>와 <라라랜드>
기자수첩/<문라이트>와 <라라랜드>
  • 이승열
  • 승인 2017.04.06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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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지난 2월26일(현지 시각) 열린 미국 아카데미영화제 시상식에서는 희대의 해프닝이 있었다. 시상식의 하이라이트인 작품상 시상을 맡았던 워렌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이들이 함께 주연했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는 올해 개봉 50주년을 맞았다)는 수상작을 <라라랜드>로 발표했다. <라라랜드> 관계자들은 기쁨을 함께 나누며 소감까지 말했지만 잠시 후 수상작은 <문라이트>로 정정 발표됐다. 이름이 적힌 봉투가 잘못 전달돼 발생한 사건이었다.

만약 수상작이 정말 <라라랜드>였다 해도 큰 반론은 없었을 것이다. <라라랜드>와 <문라이트>는 모두 좋은 영화였고 관객과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두 영화는 모두 젊은이의 삶과 사랑을 다룬다. 하지만 두 영화는 그 주제를 이야기하는 방식에 있어 대조적이다.

<라라랜드>는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을 매우 보편적인 방식으로 다룬다. 남녀 주인공은 각각 재즈 피아니스트와 배우로서 성공하길 바라는 예술가 지망생이다. 이들은 서로 사랑에 빠지지만 성공의 길은 순탄치 않고 때때로 현실과 타협해야 하며, 사랑 역시 쉽지 않다. 하지만 영화는 판타지의 요소를 가미해 그들의 꿈과 사랑을 기어이 이뤄준다. 그럼으로써 현 시대를 사는 젊음을 위로한다.

반면 <문라이트>는 한 개인의 성장을 들여다보는 매우 개별적인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뚜렷한 줄거리 없이, 그저 한 흑인 남성의 성장에서 매우 중요한 몇 가지 장면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인간의 성장은 인과관계로 이뤄지는 과정이 아니라, 몇 개의 진실된 순간으로 채워진다는 사실을 말한다.

나는 올해 작품상을 받은(받았다 뺏긴) 이 두 작품을 보고 사람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에 대해 배웠다. 앞서 말했듯 이 두 작품의 방식은 매우 다르다. 하지만 두 영화는, 소중하고 진정한 순간으로 채워진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꿈과 사랑을 보듬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아름다운 새 봄을 맞았다. 봄은 가혹한 겨울과 여름 사이의 찰나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이 계절을 충분히 즐길 자격을 가진 소중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 땅의 봄은 그간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고 너무나 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우리 역사에서 꽃 피는 4~5월은 죽음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은 대한민국. 개혁과 적폐청산을 바라는 수많은 목소리들이 울려 퍼지고 있지만 때로 공허하기도 한 것 같다. 새로운 대한민국은 그동안 죽어간 사람들이 살았던 삶의 순간순간, 꿈과 사랑을 되새기고, 살아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앞으로 한 달여 간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누빌 그 분들이 제발 생명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사람이 억울하게 죽어가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