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혐오는 평등의 반대말
<기자수첩> 혐오는 평등의 반대말
  • 이승열
  • 승인 2017.05.25 13:56
  • 댓글 0

   
 

[시정일보]‘여기’에 들어서자 여성인 직원 3명이 일어나더니 나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반가움을 표시하는 순간에도 경계의 눈길이 느껴졌다. 나는 “10번 출구 사진을 찍어도 되나요?”라고 묻고 허락을 받았다. 사진을 찍는 나에게 한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나는 신문기사를 보고 알게 됐다고 답했다. 주로 여성문제를 다루는 인터넷언론이다. 그제서야 그녀는 경계를 풀고 말했다. “얼마 전 ●● 회원들이 몰려와서 행패를 부린 일이 있어서요” ●●는 극우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다.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2층에 위치한 성평등도서관 ‘여기’에는 ‘기억ZONE : 강남역 10번 출구’라는 공간이 조성돼 있다. 2016년 5월17일 강남역 인근 노래방 화장실에서 살해된 23세 여성을 추모하는 포스트잇 메시지 3만5350건을 보존해 놓은 곳이다.

1년 전 일어났던 사건의 성격을 두고 논란이 많았다. 의견의 대립은 사건을 어떻게 부르는지로 나타난다. 한쪽은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 다른 한쪽은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이라 한다. ‘묻지마’를 포함시키는 쪽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한 개인이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저지른 살인으로 본다. 반면 반대쪽은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고 보는데, 그 근거로 범인이 “평소 여성에게 무시당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점, 화장실에서 숨어서 남성 6명을 거르고 여성을 대상으로 택한 점을 든다.

정신과의사로 유명한 서천석 마음연구소장은 사건 이후 “정신병의 증상은 사회적 맥락 속에 있다”며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 피의자의 망상이라고 하더라도 그 망상은 ‘여성혐오’라는 사회적 맥락을 반영하고 있다”고 썼다. 나는 이 의견이 사건의 원인을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혐오’는 무엇일까? 직접적인 정의보다는 “남성혐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우에노 치즈코의 단언에서 그 뜻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의 저자인 그녀는 “젠더 간 비대칭성과 권력 차이를 감안하면 남성혐오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즉, ‘혐오’는 약자에 대한 강자의 시선을 뜻한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이 일어난 후 정부와 지자체들은 앞다퉈 ‘여성안전대책’을 내놨다. 특히 관내에서 불행한 사건을 맞은 서초구는 지난 1년간 화장실 비상벨과 CCTV 확대 설치, 남녀화장실 분리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고, 올해도 여성안전을 위해 31억원을 들인다. 여성인 조은희 구청장이 관심을 쏟는 사안이다.

물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혐오’를 제거해 나가는 일이 아닐까? ‘혐오’의 제거는 ‘평등’의 확대와 같은 말이다.

참고로 사건의 범인은 올해 4월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징역 30년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