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일보 사설/언어의 품격은 국격이다
사정일보 사설/언어의 품격은 국격이다
  • 시정일보
  • 승인 2017.05.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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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내가 이러려고 한글을 창제하였는가” 세종대왕께서 혀를 찰 것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

대, 대선에서 품격 잃은 언어의 상실을 목격해야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대중 속에 그 후유증이 반응한다. 2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8주기 추모제가 광화문광장에서 있었다. 가수 김장훈은 무대에 올라 욕설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공연에 앞서 경찰과 주차문제로 시비를 가졌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무대에 올라 부당함을 이야기하며 욕설을 거르지 않고 쏟아 냈다. 다짜고짜 나온 욕설에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행사장에는 가족단위도 많았다. 일부 참가자는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김씨의 욕설은 대선의 후보자 언행과 연결선상이다. 홍준표 씨는 입에 담지 못할 돼지 흥분제 회고록 사건으로 우리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그는 자신의 저작물을 친구의 흠집으로 돌리는 파렴치도 보였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처럼 사설자는 대선은 가도 그들의 언행은 남는다고 밝힌 바 있다. 말이 씨가 되듯 1만명 이상이 모인 광장에서 여과 없이 욕설을 퍼부었다. 주변의 권고인지는 몰라도 공연 말미에 김씨는 고 노무현 대통령께 죄송하다고 사과하듯 말했다. 이 또한 대선 후보자의 모양새와 너무나 흡사하다. 사과를 하려면 광장의 시민에게 해야 한다. 허공인사처럼 고인에게 하는 사과는 진정한 사과도 아니다. 새로운 것이나 가치 있는 행위는 인정되기 어렵다. 그러나 가치가 없는 것들이 더 쉽게 퍼지는 것이 무서운 일이다. 사회적인 의사가 개인의 생각을 지배하는 것이라면 소멸하는 것이라고 피카소는 어느날 말했다. 교실 안의 하품이 전염이 돼 같은 반 모두가 하품을 한다는 속설도 있다. 사회의 나쁜 규범은 그 사회의 동심까지도 무너뜨리고 만다. 노래는 사람들의 위로다. 위로하는 뮤지션이 욕설을 하고 다시 노래를 한다는 것은 무슨 논법으로 이해를 할까. 돼지 흥분제 사용을 여과 없이 회고록에 기록한 홍준표. 자신이 저지른 일을 타인이 한 양, 무심의 사과논법이다. 그런 지도자가 대통령이 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예술에도 항의가 필요한가라는 말이 있다. 세상의 규범은 선한 예술에게도 항의를 하며 진보는 거듭된다. 더욱이 규범을 어기는 사람에게는 반성을 요구하거나 격리시키는 것이 옳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규범을 어긴 자를 너무나 쉽게 용서한다. 그래서 그들은 콩나물처럼 무럭무럭 자라게 된다.

지식은 넘쳐나도 지혜가 모자라는 사회, 헛똑똑이는 많아도 참된 바보가 씨가 말라가는 풍토에선 세종대왕과 같은 초월의 위인이 나올 수 없다.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소수의 지도자들의 탓이다. 권력의 욕심에 눈이 멀어 언어의 순화는 아랑곳이다. 자신이 한 말이 씨가 되고 그 씨는 미래의 젊은이에게 양식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지도자다.

삶이란 커다란 신비다. 커다란 신비를 만드는 것은 어른이다. 키 크고 육신이 커서 어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