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장칼럼/ 공정사회의 조건
단체장칼럼/ 공정사회의 조건
  • 김성환 노원구청장
  • 승인 2017.05.2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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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노원구청장
   
 

[시정일보]우리 사회는 상류층을 제외하면 최저임금으로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서민의 고단한 삶을 잘 반영하는 것이 자살과 출산 통계다. 자살률은 OECD회원국 가운데 1위,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한마디로 지금이 가장 불행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이야기다.

이는 IMF 이후 정부 개입 축소와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으로 인한 소득 양극화가 큰 원인이다. 사회 곳곳의 불공정한 경쟁과 복지 시스템 부재 등 잘못된 제도와 관행도 한 몫 하고 있다. 견디다 못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빈곤층, 항상 신분이 불안한 비정규직 등 상위 1%와 나머지 99%로 비교되는 극심한 부의 불균형 해소를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첫째, 기업 활동은 공정한 경쟁이 되어야 한다. 많은 대기업이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오너 위주의 실적 지상주의 경영과 하도급 업체에 과도한 납품가격 인하를 강요하고 계열사에 일감 몰아주기 등 각종 불공정 행위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대기업은 현금이 넘쳐나는데 하도급 업체는 자금난으로 무너지고 있다. 대기업의 이익은 협력업체들과 공유해야 한다.

둘째,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다. 기업은 상시 고용을 해야 하지만 인건비 부담과 노조 문제 등 위험 회피를 위해 손쉬운 사내하청과 파견근로라는 편법을 쓴다. 이는 노동의 질 악화와 근로 소득 저하로 이어진다. 국내 2000대 기업의 한해 매출액이 815조 원에서 1711조원으로 두 배 넘게 커지는 동안 기업의 일자리는 겨우 2.8% 증가한 것만 보더라도 고용 없는 성장은 우리 경제에 독이 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셋째, 보편적 복지체계 구축이다. 국민들은 이미 소득세 등 각종 세금과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 기여금을 납부했다. 국가는 그 세금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것이고, 국민은 그 재원으로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기에 급식이나 보육 등 복지서비스는 ‘무상’이 아닌 당연한 권리다. 보편적 복지는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적 요구를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다. 결국 질병이나 빈곤, 노후 생활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어 자살을 줄이고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길이다.

마지막으로 패자부활이 가능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경쟁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탈락자는 나오게 마련이다. 요즘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묻지 마 범죄’에서도 알 수 있듯 이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하지만 2015년 GDP 대비 우리나라의 복지 예산 비율은 7% 수준으로 OECD회원국 평균 20%에 크게 못 미친다. 안정적인 복지체계는 지속적인 국가 발전에 필수 조건이다. 복지비 지출이 많은 북유럽 국가들이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도 높은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사회안전망 확충이 절실하다. 경쟁에서 탈락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록 한시적이지만 청년들의 구직활동을 돕기 위한 ‘청년 취업 준비금’ 지원이다. 지난해 7월, 노원교육복지재단의 후원금과 민간기업 기부금 등 2억원으로 청년 50명에게 1인당 200만원의 취업준비금, 고교생 200명에게는 각 5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혹자는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지만 독일은 대학생들에게 매월 생활비도 준다는데 우리나라는 복지수당이나 직업재활비용 지출이 유럽 복지국가의 10%도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취업준비금은 넓은 의미의 직업 재훈련 비용인 셈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다. 국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근로자의 삶이 불안한 상황에서 사회가 안정되길 기대할 수 없다. 사회 전반에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개선해 정당한 노력이 보상받고 당연한 것이 당연히 지켜지는 공정사회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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