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장칼럼/ 자주국가인 대한제국 선포한 환구단을 복원하자
단체장칼럼/ 자주국가인 대한제국 선포한 환구단을 복원하자
  • 최창식 중구청장
  • 승인 2017.09.28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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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식 중구청장
   
 

[시정일보]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낭인들을 시켜 1895년 명성황후를 살해한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이듬해, 일본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한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단행했다.

러시아공사관에서 치욕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1897년 2월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나라의 운명을 더 이상 주변국에게 맡길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신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황제의 자리에 오를 계획을 세운다.

먼저 연호를 '건양'에서 '광무(光武)'로 바꾼 고종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환구단의 축조에 나섰다. 환구단 후보지는 경운궁 가까이에 있는 소공동의 남별궁 터였다. 임진왜란 이후 중국 사신의 숙소로 사용된 남별궁 자리에 환구단을 만들어 하늘에 대한 제사가 중국 황제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조선의 왕도 하늘과 소통하는 존재임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서다. 즉, 조선이 중국과의 전통적인 사대단계를 완전히 단절하는 자주독립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3층의 원형 제단인 환구단은 화강암으로 만들고 바닥에는 벽돌을 깔았는데, 이후 중앙 상부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을 칠한 원추형의 지붕을 설치했다. 1897년 10월12일 고종은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후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이날 백성들은 집집마다 태극기를 달아 환호했다. 황제 즉위식 다음날 고종은 국호를 '대한'으로 한다는 것을 선포함으로써 대한제국이 공식적으로 출범하였다.

1903년에 최종적으로 완성된 환구단의 전체 시설은 제를 올리는 환구단과 천신의 위패를 모시는 황궁우, 그리고 그 주변 시설로 어재실, 향대청, 석고각 등을 갖추었다. 이같은 구조는 현재 중국 베이징에 있는 천단과 비슷한 모습이다.

1910년 국권을 강탈한 일제는 1913년 환구단 제단을 헐고 그 자리에 조선경성철도호텔을 세웠다. 대한제국의 상징적인 장소를 없애 한민족의 정체성을 억누르기 위한 의도였다. 이에 따라 남아있던 황궁우 영역은 호텔의 정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심지어 환구단의 정문은 그대로 호텔 정문으로 사용되기까지 했다.

1960년대 후반 화재로 소실된 철도호텔 자리에 들어선 것이 지금의 조선호텔이다. 당시까지 남아있던 환구단의 정문과 재실 등 부속건물은 해체되어 판매되거나 훼손되었다. 고종이 즉위식을 했던 환구단의 제단은 물론 재실 등도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환구단의 부속건물인 황궁우와 돌북인 3개의 석고만 남아있을 뿐이다.
환구단의 정문으로 사용되던 문이 우이동의 그린파크호텔에서 발견되어 2009년 제자리가 아닌 시청 광장 쪽으로 이전되었다.
대한제국은 국권을 빼앗긴 1910년까지 13년 정도의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존재하였지만 대내외적으로 자주독립국을 꿈꾸었던 나라였다. 그리고 그 국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계승되었다.

최근 동북아 정세는 대한제국이 선포되던 당시와 흡사해 보인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의 운명이 자칫 주변 강대국의 이해타산에 따라 정해질수도 있다는 우려가 깊다. 물론 대한제국 당시와 달리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10위 수준의 국방력을 갖춘 나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 조차 국론이 심하게 갈라지는 등 나라의 힘이 분열되고 있고, 인근 국가들과의 외교적 공고함도 여러 갈등 구도로 약해져 가는 듯 해서 참으로 걱정스럽다.

그래서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이 되는 10월12일을 맞아 21세기 상황에 걸맞게 국난을 헤쳐나가고자 자주적 정신을 함양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일제가 훼손한 환구단을 복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자리에 있는 조선호텔을 을지로 미공병단 부지나 신당동 기동대 자리 등에 대체부지를 마련하여 이전할 수 있도록 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 아니라 중국 황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어엿한 자주국임을 선포한 이곳에서 현재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나라임을 알릴 수 있는 상징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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