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자치구 ‘때 아닌 食水難’
서울 자치구 ‘때 아닌 食水難’
  • 시정일보
  • 승인 2005.12.0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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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용식 기자

11월부터 서울 25개 자치구에서는 정수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가 자치구에 ‘정수기 철거 및 생수 등 반입금지 협조요청’이란 공문을 보내고 나서부터다. 대신 수돗물을 대신 받아먹으라는 내용이다. 만일 그렇지 않을 경우 예산상 불이익을 준다고 자치구에 으름장을 놨다.
결국 서울시에 예산의 상당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자치구들은 상수도사업본부의 ‘엄포’를 견디지 못하고 정수기를 철거했다. 더욱이 재산세제 개편 등으로 세입이 줄어든 판국에 서울시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건 ‘울며 겨자 먹기’식이다.
한 자치구 계장은 “화장실에서 수돗물을 받아먹으려니 참 곤란한 상황이다”면서 “특히 우리처럼 청사가 오래된 곳은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할 수 없는 실정이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계장은 “사무실에 나와서는 물을 마시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자치구 직원도 비슷한 입장이다. 그는 “수돗물을 그냥 마시기는 꺼림직 해 끓여 먹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행사가 많은 부서라 행사다음에 남은 생수를 마셔 다행이다”고 말했다.
결국 자치구들은 때 아닌 식수난을 겪고 있는 셈이다.
상수도사업본부 관계자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수돗물을 마시지 않는 것이다”면서 “낡은 배관에서 나오는 녹물은 철분으로, 몸에 해롭지 않다”고 강조한다. 이 관계자는 “서울 수돗물 수질과 시민감정과는 차이가 많다”며 앞으로 수돗물 홍보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상수도사업본부에 따르면 자치구와 산하기관 정수기 수질검사 결과 약 56%가 대장균 등 세균에 오염되는 등 수질기준을 초과했다. 오히려 정수기 물이 건강을 해친다는 얘기다.
하지만 수돗물에 대한 국민 불신이 팽배해 있는 상황에서 상수도사업본부의 의도는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조사에 따르면 국민 57.8%가 수돗물을 식수로 부적합하다고 생각하고, 국민 1%만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고 있다.
상수도사업본부의 이번 조치가 ‘힘 있는’ 상부기관의 편의주의가 아니길 바란다. 공무원도 수돗물 수질에 민감한 국민 중 하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