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포럼 ‘미래를 위한 토론회’
청계천포럼 ‘미래를 위한 토론회’
  • 시정일보
  • 승인 2006.01.2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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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복원보다 ‘守成’이 더 중요
18일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는 청계천의 바람직한 미래 모습을 모색하기 위한 청계천의 미래를 위한 대토론회가 개최됐다.

작년 10월1일 복원된 청계천. 자신을 덮고 있던 무겁고 잿빛 콘크리트 더미를 벗은 청계천은 47년 만의 햇빛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복원된 청계천은 사람들에게 미소를 머금게 했다. 청계천을 찾은 사람도 1월17일 현재 1268만9612명이나 된다. 외국인들도 청계천을 찾아 한국의 새로운 멋을 느끼고 있다. 청계천은, 그러나 앞으로 할 일이 많다. 사람중심 공간으로 꾸며진 청계천을 두고 일부는 ‘거대한 인공분수’라고 혹평한다. 또 청계천 주변이 제멋대로 개발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이런 우려들을 털어내기 위해 18일 청계천포럼(www.reseoul. com)은 ‘청계천의 미래를 위한 대 토론회’를 프레스센터 19층에서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를 소개한다.<편집자주>







황기연 “난개발 막는 도시계획적 관리 틀 필요”
노수홍 “역사·문화 회복하는 제2 복원 있길”
정동양“사람이 ‘점령’…생물 다양성 아쉬워”
유상오 “동대문 시장 주변 다시 디자인해야”




이날 열린 토론회에는 150여 명의 시민들이 청계천의 미래모습을 전망해보려고 모였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대부분 이순(耳順)을 넘긴, 청계천의 기억을 안고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보였다.
주제발표자들과 토론자들은 청계천 복원에 의미를 두면서도, 복원과정에서 미처 돌보지 못했던 역사성과 문화성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런 측면에서 이날 토론회는 청계천의 역사와 문화를 살리고, 도심기능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지렛대 역할이 무엇인지 모색하는 자리였다.
행사를 주관한 조광권 청계천포럼대표는 “학교에서 강의할 때 청계천은 우리 국민의 수준만큼 될 것이라고 학생에게 말한 적 있다”면서 “청계천은 서울의 코에 해당되는 만큼 청계천의 미래를 위한 고견을 제시해 달라·고 당부했다. 조 대표는 또 “청계천은 300년마다 깨어나고, 그 때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청계천 복원을 평가했다.
장석효 서울시 제2부시장은 서울시장을 대신한 인사말에서 청계천복원추진본부장으로서 청계천 복원의 소회를 밝힌 후 “청계천이 유지관리는 물론 주변부 개발을 잘해 세계적인 명소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첫 번째 주제발표에 나선 황기연 홍익대학교 교수는 ‘청계천 복원과 도심부의 미래’를 주제로 청계천의 옛 모습을 보여주며 청계천 복원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황 교수는 “600년 서울의 역사성 회복과 문화공간을 창출하고 시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도시 서울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청계천 복원이 시작됐다”면서 “청계천 복원으로 서울은 인간중심의 생태적 친환경도시로 전환했고 지역간 균형발전의 매개가 됐다”고 규정했다. 황 교수는 “청계천 주변 개발을 둘러싸고 생길 극단적인 주장을 조정하기 위해 도심부발전계획이 수립됐다”며 “도심부 복원은 대립의 개념이 아닌 공존의 개념, 선택의 문제가 아닌 균형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날 황 교수는 서린·무교·다동지역은 국제적 수준의 업무지구, 관철동지역은 외국어교육과 유학 등 해외여행서비스가 결집된 젊음의 공간, 세운상가 주변은 청계천과 남북 녹지축이 어우러진 도심복합타운, 광장·방산·동대문시장 지역은 시장특화지역으로 육성해 청계천 복원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두 번째 주제발표자인 노수홍 연세대학교 교수는 ‘청계천 살리기 연구회와 청계천 연구재단’을 주제로 청계천 복원과 관련, 학계 등의 논의를 소개했다.
노수홍 교수는 “청계천이 3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도 큰 시행착오 없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청계천 복원을 위해 준비한 사람들이 사업에 참여했기 때문이다”고 평가했다. 노 교수는 그러나 “작년 10월1일 완공된 청계천은 1단계 복원이고 백운동천과 중학천 등 지천 복원, 옛 다리와 석축 복원, 하천 주변의 도시계획, 유지용수의 자연적인 공급 등 중요한 과제가 남아있다”며 “1단계가 콘크리트로 덮여 있던 하천을 열었다면 2단계는 청계천의 역사와 문화를 회복하는 사업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특히 이날 작년 12월 해체된 청계천복원추진본부의 해체를 아쉬워했다. 그는 “청계천 복원사례를 배우려고 국내외에서 문의가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청계천복원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는 복원추진본부 해체는 자칫 청계천 복원과 관련한 자산들을 잃을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청계천연구재단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교원대학교 정동양 교수는 해외의 하천복원 사례를 살펴보면서 청계천 복원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비교했다.
정 교수는 ‘해외의 하천복원 사례와 청계천’을 주제로 진행한 발표에서 “유럽은 하천을 선형으로 만든 결과 수변생태계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시켰다”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사행하천으로 설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 교수는 이어 “복원된 청계천을 볼 때 세계에서 유례없는 효과, 즉 의미를 갖는다”면서도 “화장실과 같은 편의시설과 안전시설이 더 확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상오 동대문포럼 운영위원장은 ‘청계천을 활용한 동대문 개조론-동대문시장 주변을 다시 디자인 한다’를 주제로 “청계천 주변의 여러 기능을 연계시키지 않는다면 청계천은 ‘청계천만을 위한 청계천’이자 ‘전시성 청계천’에 불과하다”고 규정했다. 그는 또 청계천 복원과 관련, “청계천을 ‘사연 있는 곳’으로 만들려면 을지로6가 공병단을 이전하고 그 부지에 연못 등을 만들어 훈련원공원과 연계한 생태공간으로 조성해야 한다”면서 △청계천에서 동대문시장으로 갈 수 있는 보행로 신설 △동대문운동장 안 노점상 철거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청계천 문화 복원 등 동대문시장상인들의 부탁도 전달했다.
주제발표 후 이어진 지정토론에서도 청계천의 역사성과 문화성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주류를 이뤘다. 즉 청계천에 하드웨어가 있지만 소프트웨어가 없다는 설명이다.
박철우 서울시립대학교 교수는 “전임 시장시설 만든 “지방의제21·이 구체적 실천이 없었는데 복원된 청계천이 지방의제21을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면서 “청계천의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현재의 청계천 복원효과를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정일 동서문화사 대표는 “청계천에는 ‘정신’이 없다”고 규정하며 “청계천 주변에 있던 광문회와 이준열사기념관 등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김영주 박경리토지문화관장은 “복원과정에서 조건이 맞지 않아 역사성과 친환경성 회복이 무시된 측면이 없지 않다”면서 “동대문운동장을 공원으로 할 경우 지하에 집수정을 설치하고, 차도를 없애 보행자도로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연심 장원건축대표는 “청계천에서 아이들과 가족, 연인들의 밝은 모습을 느낄 수 있어 좋다”면서 “서울시도 청계천을 루비통이나 볼보 같은 명품으로 만들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 대표는 그러나 “개발형태가 블록을 넘어 슈퍼블록으로 진행되는데 청계천이 가진 정체성이 사라질 수 있다”며 지침마련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方鏞植 기자 / argus@sijung.co.kr



토론발제 요약 - 조광권 청계천포럼대표


청계천 복원은 서울르네상스의 시작

조광권 청계천포럼대표
서울이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청 앞에 푸른 광장과 횡단보도가 생겼고, 먼발치에서 스쳐봐야 했던 국보1호 숭례문도 걸어가서 구경할 수 있게 됐다. 또 얼마 전까지 불안하고 어수선했던 청계천 주변이 복개도로와 고가가 헐리고, 맑은 물이 흐르는 수변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고 느림보 시내버스가 전용중앙차선으로 신나게 손님을 실어 나르고 있다.
해방 후 반세기 이상을 우리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잘살아보세’라는 새마을노래로 대변되는 경제개발 시대, 빨리빨리 시대의 상징이 청계천 복개도로와 고가도로였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사람들은 더 이상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환경을 오염시키고 생태와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개발을 원하지 않게 됐다. 청계천 복원은 바로 이러한 시민들의 바람이 현실화된 것이며, 서울이 바람직한 미래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재탄생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사업이다.
청계천을 보면 그 시대가 보인다.
조선시대 500년의 준천과정에서도 그 시기마다의 가치관이 스며 있다. 건국초기 태종시기에는 새 왕조를 건설하고 그것을 굳건히 수성하려는 현실적 경제사상이 뒷받침됐다. 개천을 방치한 조선중기 300여 년 간은 명문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가치관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조선후기 영조의 준천에서는 실학적 사유를 공유하는 실용(實用)파 관료들의 가치관이 보인다. 또 청계천 위를 덮은 복개도로와 콘크리트 고가도로를 보면 경제성장을 최우선으로 삼았던 개발시대의 가치관이 보인다. 청계천 복원사업을 하는 데는 생태환경을 존중하는 이 시대의 가치관이 스며 있다.
이제 청계천은 바람 길과 물길이 소생, 온갖 물고기와 철새들이 몰려드는 도심의 휴식처로 변모돼 많은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청계천 주변은 아직도 도심에 부적격한 상업기능이 뒤범벅된 해방 후 60여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고, 보행이 불편해 시민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내야 할 청계천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 이 토론회를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