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들
설날,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들
  • 시정일보
  • 승인 2006.01.2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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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남 성동구의장
며칠 후면 설날이다. 민족최대의 명절. 건설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올 설에는 약 6405만 명의 국민들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단순하게 생각하더라도 약 3000만 명 이상이 움직인다는 추산이다. 한반도 남쪽 인구 4600만 명의 65%에 해당된다.
사람들은 오랜 만에 고향을 찾아 부모와 형제, 친척들을 만난다. 우리들은 여기서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얘기를 나눈다. 정담(情談)이다. 마음이 가슴에 있다면 폐부(肺腑) 깊은 곳에서 나오는 얘기일 게다.
살면서 마음 아프고 어려웠던 일들. 기쁘고 즐거웠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달래고 어루만지고 함께 기뻐한다. 이런 곳에서 우리는 카타르시스(Catharsis; 마음 속 응어리를 밖으로 터뜨려 깨끗하게 하는 일)를 느낀다. 굿판에서 한 바탕 울고 나면 마음이 환해지는 것 같은 이치다.

설날의 의미 다시 깨달아야

설은 우리 민족과 함께 면면히 숨결을 이어왔다. 그러나 설은 한 때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비문명의 상징으로까지 여겨지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1895년 갑오경장 이후 서력(西曆)을 쓰면서 설의 빛이 바래기 시작했고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시절 설을 쇠는 사람이 핍박당하던 일도 있었다. 설날이면 학생들의 도시락을 조사해 제사음식을 싸온 학생에게 벌을 주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해방 후에도 설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설날에도 학생들은 학교에 가야 했다. 아이들은 새벽같이 일어나 차례를 지내고, 동네 어른들을 찾아뵙고 부리나케 학교로 가곤 했다. 1985년 설날이 ‘민속의 날’로 지정되고 1999년 ‘설’이라는 제 이름을 갖기까지 설은 때 없는 ‘창씨개명’을 하는 신세였다.
일각에서는 양력설과 음력설을 모두 지키는 것은 이중과세라며 폄훼하기조차 했다. 민족적 관점에서 본다면 지극히 편협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설의 사전적 의미는 보통 ‘슬프다, 삼가다,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는 뜻이다. 옛말 ‘섧다’에서 왔다. 지금도 서럽다는 표현이 남아있다. 이날은 일년 내내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도록 행동을 조심하고, 그 해 농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축원을 하는 날이었다. 또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설빔을 입기도 했다.
그 만큼 설은 새봄, 즉 신춘을 맞으려고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조심하고 근신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기록에 설날을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한 것도 그 이유다.
하지만 설은 변하고 있다.
풍속에도 역사성이 있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점점 핵가족화하고 평균출산인구가 1.6명이라는 현실을 감안할 때 머잖아 설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더욱이 요즘 젊은이들에게 설은 ‘쉬는 날’의 하나일 뿐이다. 그들에게 설은 크리스마스는 물론이고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만도 못한 날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차례를 지내고, 어른들을 찾아 세배를 드려야 하는 일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세뱃돈마저 없다면 차라리 없어도 될 날로 생각할 수도 있다. 어쩌면 박물관이나 백과사전, 민속촌에나 가야 설을 만날지도 모른다. 설날 체험프로그램도 생길 수도 있을 게다.

눈물 닦아주는 지도자 볼 수 있다면

그러나 머잖아 사라질지도 모를 설이지만, 그 풍속과 의미를 이어갔으면 한다. 더욱이 요즘처럼 경기가 끝없이 어렵고 서민들은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을 살피고, 나아가 이웃을 돌아봤던 설은 오랫동안 지속되길 바란다. 우리 아들의 아들, 그 아들의 아들들에게까지.
병술(丙戌)년 설날이 모든 사람에게 기쁨이 두 배되는 날이었으면 한다. 슬픔을 모두 던져버릴 수 있는 날이었으면 한다. 자기가 ‘지도자입네’하고 여기는 분들은 서민들의 기쁨은 두 배로, 슬픔은 절반으로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마침 5월31일에는 제4회 전국 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다. 큰 소망을 꿈꾸는 사람들이 서민들의 고통과 슬픔을 닦아주었으면 한다. 그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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