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학교’ 탄생에 즈음해
‘귀족학교’ 탄생에 즈음해
  • 시정일보
  • 승인 2004.03.0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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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란 기자-

‘특목고’, ‘자립형사립고’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귀족학교’가 들어서는 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신자유주의 물결이 고스란히 흡수되면서 귀족사회도 태동을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 서울시는 지역불균형을 해소하고 강북발전을 꾀한다는 이유로 ‘뉴 타운 건설’이라는 대단위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그리고 뉴 타운과 함께 등장한 것이‘특목고’와 ‘자립형사립고’다.
특목고와 자립형사립고란 행정기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학교가 가질 수 있는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해 줌으로써 학교 재량껏 운영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학교의 자율권이 커지는 만큼 학생들에게도 자율권이 커질 수 있을까.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데 있다. 앞으로 학교는 얼마든지 학교의 의도에 의해 귀족학교로 거듭 태어날 수 있다는 말도 된다. 각도를 달리 해석해 보면 사교육의 공교육화라기 보다는 공교육의 사교육화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제 대학입시 뿐만 아니라 고교 입시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학교가 추구해야 할 전인교육과 인성교육이 구시대의 유물로 묻힐지도 모르는 위기가 바로 우리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보다는 학부모들이 더 이 같은 ‘귀족학교’를 원하고 있고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다.
일선 교사들은 “현재 아이들의 심성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과학이나 기술의 발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이미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과학이나 기술의 발전을 위해 아이들을 혹사시키는 것보다 인류의 유한한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아이들의 심성을 기르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신자유주의의 흐름에 따라 있는 사람에게는 유리하고 없는 사람들에게는 불리한 경제논리가 교육에도 적용된다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교육의 백년대계가 경제논리에 따라 정해진다는 건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을 불문하고 많이 슬퍼해야 할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