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도시의 추억
수해도시의 추억
  • 시정일보
  • 승인 2006.07.2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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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남 승 본지 논설위원


해마다 겪게 되는 물난리다. 집중호우가 쏟아졌다하면 전국이 일시에 아수라장으로 변하며 도로가 유실되고, 가옥이 침수되며, 농경지는 매몰되어 황폐화되는 피해가 거듭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정부 고위층의 현장방문이 이어지고, 장대비속에 국군장병들이 현장에 투입되는 것도 거듭되는 낯익은 그림들이며 피해당사자들의 처참하고 안타까운 모습도 한결같이 반복된다. 그러나 이번 집중호우 때는 다른 모습이 한군데 있었다.
1996, 1998, 1999년 집중호우 때 주택이 지붕까지 물에 잠기는 등 도시 전체가 며칠씩 거대한 호수로 변해 버릴 만큼 수해도시로 악명을 떨쳤던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이 그곳이다.
16일 오후 2시. 183㎜의 집중호우가 퍼붓고 주변 임진강에 홍수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에서도 문산 주민들의 생활은 평온했고, 버스는 정시에 오가고 있었다. 같은 시간, 강원도와 경기도, 서울 등 중부권 일대가 최악의 물난리를 겪고 있던 것과는 확연히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파주시 문산읍은 거듭되는 수해에 시달리다 도시를 완전히 개조하는 수방대책을 세운 뒤 수해도시라는 오명을 씻어내고 수방도시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쌓아가고 있었다.
12,13일에는 200㎜의 폭우가 쏟아졌는데도 문산읍은 수해의 무풍지대였다. 이러한 평화스런 모습은 과연 일조일석에 나타난 모습이었을까.
1996, 1998, 1999년 집중호우. 당시 주민 35명이 사망하고 1787억 원의 재산피해를 봤던 대표적 수해지역 이었다. 그러나 파주시는 2000년부터 3년간 4000억 원을 투입, 도시시스템을 개조하기 시작했다.
우선 문산읍을 둘러쌓고 있는 문산천과 동문천 제방양쪽 20㎞ 및 경의선 철로 1㎞ 구간의 지반을 3~5m 높였다. 또 임진강변인 두포제 2.28㎞와 마산제 1.68㎞의 제방도 5m로 높이고, 하천바닥도 넓혔다. 통일대교 등 임진강 위 교량 곳곳에 강물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CCTV를 설치해 시재난안전대책상황실에서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있다.
또 문산읍에 있는 배수펌프장을 한 개에서 여섯 개로 늘리고, 배수용량도 분당 500톤에서 3000톤으로 늘렸다. 뿐만 아니라 평소 100㎜ 정도의 비만 내려도 물에 잠겼던 저지대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과정에서 지반을 5m나 높여 수해에 대비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민·관이 하나되어 수방대책을 철저히 한 결과 하루 200~300㎜의 집중폭우가 쏟아져도 두렵지 않은 수방 안전도시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그 결과 많은 자치단체가 지금의 파주시와 문산읍의 수방대책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상습피해 지역을 완벽한 수방도시로 개조한 문산읍의 경우가 말해주듯 평소 유비무환의 수방체제를 구축해 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재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장마철이 지났으니 내년 이맘 때까지 시간이 있다고 늑장을 부리다가 이것저것 당장 급한 사업에 수방안전은 매몰되고 마는, 그래서 연례행사처럼 피해를 당하고 후회하는 어처구니없는 경험을 반복해야만 하는가.
그러나 문산에도 임진강 상류에 건설 추진 중인 한탄강 댐이 조기에 완공되지 않을 경우 문산지역은 언제나 불안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생명과 재산을 일시에 휩쓸고 지나가는 수해에서의 탈출은 쉬운 일은 아니다. 치밀한 계획과 단합된 민·관의 노력, 그리고 쓰라린 피해를 잊지 않은 단단한 결심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내 고장을 지켜낼 동력은 결코 마련되지 않는다.
흙탕물에 뒤덮힌 시가지, 살기 위해 안전대피 시설에 몸을 의탁하던 절박한 순간들, 가재도구와 식량 어느 것 하나 꺼내오지 못하고 구호라면에 허기를 면해야 했던 지난날의 경험, ‘수해도시의 추억’ 을 잊지 말아야 한다.
쉽게 잊어버리는 건망증은 또 다른 불행의 출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