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재정분권이 지방자치 성패 좌우한다
신년기획/ 재정분권이 지방자치 성패 좌우한다
  • 문명혜
  • 승인 2018.01.04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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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2차 세계대전 종전후 주요 승전국의 이해충돌에 따라 분단이 이뤄지고 참혹한 전쟁의 폐허속에서 반세기 넘게 격동의 대하드라마를 펼쳐온 대한민국.

우리는 작년에도 역사에 기록될 어마어마한 이벤트를 치러냈고 세계의 이목은 세계사 초유의 정치실험을 경이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듯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는 장을 넘겨 무술년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새해 아침을 지방자치 발전을 기원하는 기획기사로 열어 온 본지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연작을 준비했다.

지방분권의 핵심내용인 재정분권과 4년마다 거행되는 지방선거 해임을 감안해 서울시자치구의원선거구획정(안)을 둘러싼 이모저모를 두차례에 걸쳐 살펴볼 계획이다.

이번호에서는 먼저 지방자치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지방자치 성패를 좌우할 사안으로 꼽고 있는 재정분권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7개월전 광장혁명의 결과로 새정부가 들어섰다. 10여년전 수도권 비대화를 막아보려 무던히도 애썼던 참여정부의 이념을 이어받은 현정부는 지방분권의 완성을 주요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시도지사간담회를 ‘제2의 국무회의’로 삼고 대한민국을 연방제 수준의 분권국가로 만들겠다는 공언을 접한 전국의 지방자치 관계자들은 그동안의 서러움을 모두 날려버릴만한 전율을 느꼈다.

여러해동안 ‘2할자치’가 무슨 지방자치냐며 불만을 토로했지만 별다른 변화없이 세월만 보내야 했는데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난 지방자치 관계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듯 문재인 정부는 작년 7월 재정분권 청사진을 내놓았다.

지방재정 자립을 위한 강력한 재정분권을 추진하겠다면서 국세 대 지방세 비율을 단기로는 7대3, 장기적으로는 6대4까지 개선하겠다고 했으니 드디어 지방자치의 도약기가 도래했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됐다.

 

재정분권의 전제조건들

 

재정분권은 중앙정부가 전담하던 재정책임을 지방정부가 세금을 걷고 예산을 집행하는 것을 제도화하는 것으로, 지방자치의 클래스와 궁극적인 성패를 가늠하는 핵심사안으로 꼽힌다.

재정분권이 이뤄지면 늘어난 자율성과 재정력으로 각 지방정부는 자신의 지역특성에 맞는 다양한 사업을 펼칠 수 있고 주민들의 요구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돼 우리사회를 더 높은 단계의 다양성의 사회로 견인하는 제도적 장치로 작용하게 된다.

재정분권엔 그림자도 있다. ‘인기’를 의식해 선심성 사업에 몰두하고 방만한 예산운영이 이어지면 빚더미에 오를 수 있고 자칫하면 파산의 지경에까지 몰릴 수도 있다.

그림자는 세입부분에도 있다. 풍족한 세입을 탐하며 개발이익에 눈길을 뺏기게 되면 전국은 그야말로 난개발 천지로 바뀌게 될 위험성도 제기되고 있다.

공공부문 재정연구가들은 재정분권의 문제점을 미리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방정부가 방만한 재정운영을 못하도록 투명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된다는 것이다.

누가봐도 확실히 알 수 있도록 정확하고 상세한 재정정보를 공개하도록 지방정부에 의무를 지우고, 함부로 중앙정부의 ‘구제금융’에 기대지 않도록 엄격한 관리체계를 미리 갖추는 게 재정분권 성공적 안착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다.

 

‘2할자치’ 극복이 당면과제

 

본격적인 지방자치가 실시된지 23년이 지났지만 ‘2할자치’에 머물만큼 대한민국은 아직도 중앙집권적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중앙정부로부터 지방교부세와 국가보조금 명목으로 필요한 예산을 얻어오는 게 ‘메인’이고 지방정부 자체수입은 보조수단이라 할 수 있다.

2016년 지방정부가 사용한 총 예산 중에서 지방세는 72조원이고, 정부가 지방정부에 나눠 준 지방교부세와 국고보조금은 102조원 규모인 것만 보더라도 대한민국의 중앙집권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다.

대한민국 행정부 수장의 ‘연방제 수준의 강력한 지방분권 추진’ 공언이 있었던 만큼 정부 관계부처는 내부적으로 방안을 모색하고 있고 지방자치 관계자들도 다양한 분석과 요구사항을 정리하고 있다.

국제 클래스의 재정분권안이 실행되기까진 몇 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우선 ‘2할자치’를 극복하는 것이 당면과제여서 국세 대 지방세 비율을 7대3으로 맞추기 위한 방안이 모색되고 있는 중이다.

국세 대 지방세 비율을 7대3으로 맞추려면 2016년 기준으로 대략 21조원이 필요한데, 현행 11%와 10%인 지방소비세와 지방소득세를 21%로 비중을 높이면 20조원 정도의 예산을 마련할 수 있고, 6대4까지 확대하려면 37%까지 올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고보조금 사업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방정부를 대리인으로 부리면서 일부 재정부담을 지운 결과 지방정부들은 국고보조 유치 경쟁이 붙고 전국적으로 비슷비슷한 사업들이 넘쳐나 지방자치의 발전을 지체시킨다는 지적이다.

 

지방 세수입격차 고려해야

 

차제에 국고보조사업을 전면 재심사해 전국적으로 균일하게 실시해야 할 사업과 각 지방정부마다 특색있게 해야 할 사업을 구분해 지방고유 사업은 조직과 예산을 전부 지방으로 이전해주고 국가에서 해야 할 사업은 중앙정부가 전적으로 재정부담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재정분권 방안을 고민하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가 있다. 중앙정부 배분방식에서 지방정부가 직접 세금을 걷는 조세방식으로 바꿀 때 불가피하게 조세기준에 따른 세수입의 격차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수도권과 지방,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더욱 확대돼 국토의 균형 발전이라는 놓쳐서는 안될 국정의 목표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현재 지방소비세는 전체 부가가치세 중 11%를 지방정부에 정해진 배분기준에 따라 나누는데, 재정상황이 상대적으로 넉넉한 경기도와 서울시, 인천시 등 수도권은 전체 수령액 중 35%를 상생발전기금으로 남겨 기초자치단체에 배분하고 있다.

지방소득세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법인지방소득세도 기업본사가 소재한 지방정부가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고, 사업장이 있는 지방정부에 사업장 크기와 종업원 수에 따라 배분하는데 이런 수평적 재정조정 장치는 앞으로 재정분권을 제도적으로 다듬는 과정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방안이다.

지방정부의 재정은 지방소득세, 지방소비세, 국고보조금 등 세원의 종류도 많고 중앙정부 부처, 중앙과 지방정부, 지방정부간에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단기간에 이상적인 재정분권안이 나오기는 매우 힘든 상황이다.

중앙정부는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이 있었던 만큼 주무부서에서 국세 대 지방세를 7대3 정도로 맞춰보려고 머리를 싸매고 있는 중이다.

문명혜 기자

 

기자가 본 재정분권의 미래/ 가까워 진 재정분권 도약기

지방분권은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인류의 반성과 지혜가 담겨 있다.

강력한 중앙집권의 힘이 국가주의, 군국주의의 ‘괴물’을 만들고, 그 괴물들이 세계대전을 일으켜 인류를 파멸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쓰라린 경험이 만들어낸 국가운영의 새로운 모델이 바로 지방자치였던 것이다.

대한민국도 1948년의 제헌헌법에서 지방자치를 명시했고, 바로 다음해 지방자치법을 제정해 국제 트렌드에 발을 맞췄으며, 4.19 혁명의 결과 수립된 제2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지방자치단체장을 주민의 손으로 선출하는 스마트한 지방자치 여정이 약속돼 있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61년 메이지 유신이후 강력한 중앙집권으로 ‘아시아 최강’을 이뤘던 일본의 발전모델을 동경했던 군 출신 권력자의 등장으로 우리의 지방자치는 30년 긴 세월동안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했다.

긴 잠에서 깨어난 지방자치는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하고, 4년후인 1995년에야 지방자치단체장을 주민들 손으로 선출하는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가 열렸다.

그로부터 23년이 흘러 ‘성년’이 되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우리의 지방자치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앳된 모습 그대로다.

왜 그럴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업무량은 4대6으로 지방정부가 훨씬 많지만 국세 대 지방세는 8대2로, 중앙정부한테 손을 벌려서 실시하는 지방자치가 ‘초보’ 수준을 넘어서기는 무망한 것이다.

중앙정부가 내려주는 돈으로 살림을 꾸리다보니 눈치를 봐야 하는 건 당연하고 때론 굽실거리기도 해야 되니 ‘이게 진짜 지방자치가 맞나’하는 불만이 시간이 갈수록 커져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출장소’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방선거는 있고 지방자치는 없다’는 말까지 나오게 했던 지지부진한 재정분권 상황에 드라마틱한 반전이 예고되고 있다.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공언한 문재인 정부가 등장한 것이다.

역대정권 중 지방자치 실천의지가 최고였던 참여정부의 계승자인 문재인 대통령의 등장에 내심 기대감을 갖고 있던 지방분권론자들은 취임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 국가를 만들겠다”는 ‘선언’이 나오자 환호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재정분권은 지방자치의 ‘영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스로 벌어서 써야 책임감도 생기고 미래설계도 하는 건데 국비 보조금으로 유지하는 지방자치는 ‘지방타치’라 해도 무방하다.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 지침을 읽은 행정부 주무부서는 재정분권 종합대책안을 작년말까지 내놓기로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고 두달 가량 늦춰졌다.

지방자치의 필수조건인 재정분권엔 ‘만병통치약’이 없다는 점이 확인된 것인데, 하나의 기준으로 주머니 사정이 제각각인 지방정부 전체를 만족시킬 수 없을 뿐더러 정부부처끼리도 합의안을 내놓기 어려운 ‘난제’가 바로 재정분권이다.

중앙정부의 예산통제로부터 벗어나야 진정한 지방자치가 실현될 수 있다는 말에 이론이 있을 수 없는데도 오랜 중앙집권의 관성 탓에 재정분권의 비원을 이룰 수 없었던 게 우리 지방자치의 여정이다.

지방분권론자가 최고 권력자인 상황과 중앙권력으로부터 멀어진 중앙집권 세력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현시점은 지방분권의 비원을 이룰 수 있는 호기임이 틀림없다. 재정분권의 도약기가 멀지 않았다. 문명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