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일보 신년기획/ 지방선거 5개월 전, 선거구 획정은 여전히 깜깜이
시정일보 신년기획/ 지방선거 5개월 전, 선거구 획정은 여전히 깜깜이
  • 이승열
  • 승인 2018.01.1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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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자치구의원 선거구 획정

[시정일보]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2차 세계대전 종전후 주요 승전국의 이해충돌에 따라 분단이 이뤄지고 참혹한 전쟁의 폐허속에서 반세기 넘게 격동의 대하드라마를 펼쳐온 대한민국.
우리는 작년에도 역사에 기록될 어마어마한 이벤트를 치러냈고 세계의 이목은 세계사 초유의 정치실험을 경이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듯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는 장을 넘겨 무술년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새해 아침을 지방자치 발전을 기원하는 기획기사로 열어 온 본지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연작을 준비했다.
지방분권의 핵심내용인 재정분권과 4년마다 거행되는 지방선거 해임을 감안해 서울시자치구의원선거구획정(안)을 둘러싼 이모저모를 두차례에 걸쳐 살펴볼 계획이다.
이번호에서는 두번째로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최전선인 자치구의회를 구성하기 위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본다.
편집자 주

 

 

지방정부ㆍ의회가 아닌 국회가 결정
선거 6개월 전 ‘공직선거법 개정안’ 마련해야

 

국회가 지난달 29일, 2017년 마지막 본회의를 열고 민생법안과 특별위원회 구성 안건 등을 처리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쟁점 중 하나인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의 활동 연장 문제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와 통합한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6월까지 운영하는 방법으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국민의 최대 관심사인 개헌안 마련과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시기에 대한 논의가 중단 없이 계속 이어질 수 있게 됐다. 비록 1월 중 다시 협의를 시작한다는 내용이 다지만, 개헌에 대한 논의를 계속 이어간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 특별위원회’가 더욱 시급히 처리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6.13 지방선거에 적용될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확정하는 일이다.

정개특위는 지난달 19일 전체회의를 열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개정안에는 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토론회 불참자에 대한 과태료 인상, 2개 이상 시·군·구로 구성된 지역구 국회의원의 선거비용 제한액 증액, 배우자 없는 예비후보자가 배우자 대신 1명을 지정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하지만 정작 당장 이번 지방선거에 적용돼야 할 가장 중요한 내용들인 광역의회 의원 선거구, 기초의회 의원정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비례대표 의석 확대, 선거연령 하향 조정 등은 모두 빠져 있다. 여야의 대립으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선거구획정의 기본 가이드라인과 기초의회 의원정수를 지방정부나 의회가 아닌, 국회가 공직선거법으로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는 선거 6개월 전까지 개정안을 마련해야 하지만 이 같은 임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광역의회 의원 선거구는 국회에서 결정해야 하며, 기초의회 의원 선거구는 광역의원 지역구가 먼저 획정돼야 그 범위 내에서 조정할 수 있다.

지난 2014년 6월4일 지방선거의 경우, 공직선거법 제26조 ①의 [별표2](광역의회 의원정수 및 선거구 획정), 제23조 ①의 [별표3](자치구의회 총 의석수)이 개정된 시점은 2014년 2월13일이었다. 참고로 예비후보자 등록일은 ‘선거기간 개시일 90일 전’(공직선거법 제60조의2)이다.

특히 올해 지방선거의 경우, 지난 제20대 총선에서 서울시 국회의원 정수가 48명에서 49명으로 늘어났고, 중구, 성동구, 강서구, 강남구에서 국회의원 선거구의 변동이 있었다. 따라서 기초의회 의원정수, 선거구 경계 변동의 폭과 범위 역시 이전 선거보다 커질 수밖에 없어 더욱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다.

 

선거구 획정안‘표의 등가성 확보’쟁점
구의원 1인당 인구수 편차 조정…4인 선거구 등장

 

 

‘서울시 자치구의원 선거구 획정위원회’가 지난 12월 초 ‘자치구의회 의원정수와 선거구 획정 잠정안’(이하 획정안)을 만들어 제출했다.

획정안은 서울시 25개 자치구의회 의원정수를 419명에서 418명으로 한 명 줄이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지역구 의원은 366명에서 365명으로 줄고, 비례대표는 53명으로 그대로다.

이 획정안은 말 그대로 잠정안일 뿐이다. 국회 정개특위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그에 따라 다시 최종안을 논의해야 한다. 의원정수 역시 재조정될 수 있다.

획정위에 따르면, 이번 획정안은 ‘표의 등가성’(인구대표성)을 높이는 데 가장 큰 주안점을 뒀다. 즉, 각 자치구 내 구의원 1인당 인구수 편차를 줄이는 데 가장 신경을 쓴 것이다.

우리나라는 ‘표의 등가성’을 보장하기 위해 ‘최대·최소 선거구 인구편차 허용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해당 지역 내 의원 1인당 인구수가 가장 큰 선거구와 가장 작은 선거구를 비교하는 방식을 말한다.

현행 <공직선거법>과 하위법령은 이 ‘표의 등가성’ 확보 기준을 명시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상급단위 의회 선거구 획정에 적용되는 기준에서 유추해 준용할 수밖에 없다.

지난 2014년 헌법재판소는 기존 국회의원 선거구 허용인구편차 3:1에 대해 위헌판결을 하고 2:1 기준을 제시했다. 앞서 2007년에는 광역의회 선거구 획정 허용인구편차 기준에 대해 4:1로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학자들은 기초의회의 경우 국회의 기준인 2:1보다 낮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1월10일 획정위가 개최한 ‘서울시자치구의원선거구 획정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 서강대 서복경 연구원은 “가장 적은 대표의 범위를 갖는 기초의회는 최소한 1.5:1 미만 수준을 기준으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획정안은 자치구 내 구의원 1인당 인구수를 최대한 동등하게 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를 위해 △2인선거구를 4인선거구로 통합하거나 △의원정수를 조정하는 방법을 주로 썼다.

예컨대 현재 자치구 내 선거구 인구편차가 가장 큰 마포구의 경우(3.20:1, 2017년 8월 기준), 아선거구의 의원 1인당 인구수(3만6669명)는 나선거구(1만1443명)의 3배가 넘는다. 마포구의원 1인당 평균인구수(2만3656명)를 기준으로 보면 최대(155%)와 최소(48%)의 차이가 107%에 달한다. 헌재가 광역의회의 기준으로 정했던 4:1(±60%, 120%)에 육박하는 수치다.

이번 획정안에서 마포구의 선거구는 기존 8개(지역구 의원수 16명=2인×8)에서 5개로 줄었다. 가·나, 다·라, 마·바를 각각 통합해 각각 3인, 4인, 4인 선거구를 만들었고, 사선거구(2인)는 그대로 유지했다. 의원 1인당 인구수가 가장 많았단 아선거구는 2인선거구에서 3인선거구로 바꿨다. 그 결과 지역구 의원정수는 16명으로 변함이 없지만, 최대·최소 인구수 편차는 1.3:1(28%)로 조정됐다.

이와 함께 4인선거구가 크게 늘어난 것도 획정안의 주요 변화다. 4인선거구는 기존 하나도 없었으나 이번 획정안에는 35개가 새로 생겼다. 3인선거구도 48개에서 51개로 늘었다. 반면 2인선거구는 111개에서 36개로 대폭 줄었다.

2인선거구는 양대 정당의 의석 독점과 의회 권력 나눠먹기를 유발하고 다양한 정치세력의 진입을 막는 원인이 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종로·용산·성북 줄고 강서·송파 늘어
획정위 15일 제5차 회의…2월중 시의회 통과 목표


의원정수에 변동이 있는 자치구는 종로구와 용산구, 성북구, 강서구, 송파구다.

먼저 종로구는 지역구의원 1명과 비례대표가 1명씩 줄어 총 의원정수는 11명에서 9명이 된다. 기존 가·나 선거구와 다·라 선거구를 각각 통합해 2개의 4인 선거구로 만들었다.

용산구는 지역구의원 1명을 축소해 의원정수가 13명에서 12명으로 줄었다. 기존 5개 선거구를 4인선거구 2개와 2인선거구 1개 등 3개 선거구로 통합했고, 새로운 다선거구의 의원정수를 1명 줄였다.

성북구 역시 지역구의원 1명을 줄여 의원정수가 22명에서 21명이 됐다. 기존 마·바 선거구와 사·아 선거구를 통합해 4인선거구 2개로 만드는 과정에서 지역구의원 정수 1명이 축소됐다.

반면 강서구와 송파구는 의원정수가 증가했다. 먼저 강서구는 지역구의원 1명, 비례대표 1명 등 2명이 늘었는데, 지역구 중 마선거구의 의원수가 1명 증가했다. 강서구는 지난 총선 때 국회의원 지역구가 1개 늘었던 지역으로 공직선거법 개정 이후 조정 검토가 필요해, 선거구 통합은 반영되지 않았다.

송파구는 지역구의원 1명이 늘어, 의원정수가 26명에서 27명으로 증가했다. 현 차선거구의 의원정수가 2명에서 3명으로 늘었고, 전체 선거구는 10개에서 8개로 조정됐다.

획정위가 공직선거법 개정 이후 추가 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자치구는 중구, 성동구, 은평구, 강서구, 강남구 등 5개 구다. 이 중 중구와 성동구, 강서구, 강남구는 2016년 총선 당시 국회의원 선거구에 변화가 있었던 자치구로, 이에 따라 서울시의회 의원정수에 변화가 예상되는 곳들이다. 중구와 성동구(갑·을)는 3개 선거구에서 중구성동갑과 중구성동을 2개로 통합됐고, 강서구와 강남구는 병선거구가 추가로 분구됐다. 은평구는 을선거구가 인구 상한선 이상 선거구로 지목돼 갑·을 간 경계 조정이 있었다. 이 때문에 국회의원 선거구와 시·구의원 선거구의 경계가 일치하지 않는 상태다.

앞으로 선거구 획정위는 15일경 제5차 회의를 개최하고 각 정당과 자치구의회 등의 의견직접진술을 듣는다. 이후 국회 정개특위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확정되면 추가로 회의를 열어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늦어도 2월까지는 서울시의회에서 최종 통과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승열 기자

 

자유한국당·자치구의회, 획정안 반발
“4인선거구 확대 주민소통 저하 우려”… 정의당·시민단체 등은 획정안 지지

이번 선거구 획정안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자치구의회의 반발이 이어졌다.
먼저 서울시의회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지난 12월22일 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획정안을 즉각 철회하고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자유한국당 시의원들은 위원회의 획정안은 절차적 공정성이 결여됐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구의원 4인선거구 확대는 주민소통 저하, 책임정치 실종 등 각종 부정적 결과가 초래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앞서 종로구·용산구·동대문구·성북구 등 자치구의회에서도 획정안 철회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거나 반대 의견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 12월4일 최고위원회에서 “서울시선거구획정위가 박원순 서울시장의 독단적 정치적 음모에 의해 운영된다”는 이재영 최고위원의 발언이 나오자, “힘으로 막으라”고 발언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반면 정의당과 시민단체 등에서는 “양당 독점의 지방의회 개혁을 위한 진일보한 안”이라며 지지하고 있다. 정의당 서울시당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획정안이 시민이 참여한 공청회를 거치고 그 결과를 반영해 표의 등가성 보장, 중선거구제 본래 취지를 살린 4인선거구 확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2인선거구를 통해 의회 기득권을 누려온 거대 정당들이 획정안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역시 “자유한국당이 박원순 시장의 정치적 음모론을 펼치는 이유는 4인선거구 확대로 기득권이 깨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며, “자유한국당은 선거구획정위의 독립성을 뒤흔드는 것을 즉각 중단하고 기초의회의 비례성과 대표성 확대라는 기본 원칙을 존중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