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마디/ 미래를 향하는 3·1운동의 시간
나도 한마디/ 미래를 향하는 3·1운동의 시간
  • 시정일보
  • 승인 2018.03.07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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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보훈청 홍보담당 오제호
오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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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지난 3월 1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제99주년 3·1절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이로써 3·1운동의 시간은 1년이 더 흘러 99년 전의 일이 되었다. 단순히 접근했을 때 3·1운동은 99년 전에 있어났던 수많은 사실(事實)들 중 하나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 기미년에 발생했던 수많은 일들과는 달리 3·1운동은 그렇지 않다. 비록 3·1운동은 1919년이라는 시간 속에 멈춰 있지만, 그 가치는 99년이 지난 2018년에도 계속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는 3·1운동의 가치와 교훈이 1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초월할 정도로 특별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거족적 항일투쟁였던 3·1운동은 대일항쟁기 36년을 통틀어 가장 극적인 전환점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일제의 삼엄한 감시 하에서 이천만 민족 전체가 동참하는 대일항쟁을 성사시킨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독립을 쟁취하고자 민족지도자, 지식인, 학생, 노동자 등이 힘을 합한 것도 신분사회의 구습이 이어졌던 당시에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살생을 동반한 일제의 탄압에도 한반도 전역은 물론 미주와 만주에도 만세운동이 퍼져서 5월 말까지 운동이 지속된 점 또한 특기할 만하다. 이로써 일제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을 만큼 간절한 독립의지를 우리민족이 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3·1운동 이후 그 영향으로 창조해 나간 우리의 독립운동사이다. 조직적 항거에 놀란 일본은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지배의 방식을 완화했고, 국내외 무장항일투쟁이 활성화 되었으며, 우리민족은 광복에 대한 희망을 얻었다. 특히 3·1운동을 통해 확인한 민족의 독립정신을 구체화, 활성화 할 수 있는 물리적 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은 중차대한 의의를 지닌다. 겨레의 독립의지가 그를 확대·증폭할 수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맞물려서 거대한 상승(相乘)효과를 낸 것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함께 선포된 임시헌장에는 기미독립선언서를 관통하는 독립, 자주, 평등, 민주와 같은 가치들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각부 조직과 연통제를 구축한 임시정부는 한인애국단 활동을 기점으로 조국독립전선에 순풍을 몰아왔다. 1940년 광복군 창설, 1941년 대한민국 건국강령 발표, 같은 해 대일선전포고와 연합국의 일원으로 세계 2차대전 참전, 카이로 회담에서 승인된 대한민국의 독립 등이 그것이다. 즉 3·1운동을 통해 표출되고 구체화된 우리민족의 독립의지는 임시정부 수립을 낳아, 조국광복이라는 우리민족의 궁극적 목표 달성에 거대한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온 것이다.

그런데 3·1운동의 독립정신은 1945년 광복을 통해 그 기능을 다한 듯 보였지만 광복 73년째를 맞이한 지금도 사장되지 않고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고 있다. 그것은 3·1운동이 추구하는 것이 비단 조국독립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유, 평화, 평등, 민주주의와 같은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가 당시의 독립정신에 반영되어 있었다. 한편 3·1운동 당시 죽음을 무릅쓴 만세운동의 전개는 되찾아야 할 우리민족의 국가, 대한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렇듯 애국심에 기반한 당시의 독립정신은, 전시에는 호국정신으로, 정치적 내홍에서는 민주정신으로 계승·발현되면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국가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결국 요약하자면 3·1운동은 준비와 전개과정, 결과에서 1919년으로만 한정될 수 없는 특별한 가치를 창출했다. 특히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으로 극대화된 독립정신과 항일조직체의 상승효과는 대일항쟁기는 물론 광복 이후 지금까지도 남아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헌법과 국가정체성이 된 독립정신은 3·1운동의 시간은 99년 전 멈추었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3·1운동에 대한 시간은 물리적 한계를 초월하는 것임을 시사해 준다.

내년이면 3·1운동은 대망(待望)의 100주년을 맞이한다. 100주년을 기다리고 바란다는 것은 100이라는 숫자의 특별함 혹은 상징성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3·1운동을 1919년의 일로 끝내지 않고, 임시정부 수립 등 일련의 노력을 통해 26년 만에 광복을 쟁취한 당시의 진취성과 실천의지를 본받는 일이다. 지난 3월 1일 대통령의 기념사에서 “광복 100년으로 가는 동안 한반도 평화공동체, 경제공동체를 완성해야 한다”라는 언급이 있었다. 광복 100주년은 2045년이므로 27년 간의 장기 플랜을 제시한 셈인데, 이는 1세기 전 3·1운동부터 광복까지 헌신한 애국선열들에 대한 대한 오마주(hommage)이자, 자랑스러운 선례를 계승하겠다는 실천적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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