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노블레스 말라드와 노블레스 오블리주
특별기고/ 노블레스 말라드와 노블레스 오블리주
  • 오진영 서울보훈청장
  • 승인 2018.05.03 11:19
  • 댓글 0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시정일보]최근 재벌가의 갑질이 이슈화되면서 노블레스 말라드(Noblesse Malade)라는 신조어가 재조명되고 있다. 고귀한 태생을 뜻하는 노블레스(Noblesse)와, 병든 상태를 뜻하는 말라드(Malade)의 합성어로, 기득권층이 권력에 기대 각종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현상을 가리킨다. 안타까운 한편 이러한 현상이 심해질수록 그 반대 개념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은 커질 수밖에 없다.

‘사회 지도층에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에는 병역, 기부, 사회공헌 등 다양한 유형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 중에서도 순국, 혹은 위국헌신을 몸소 실천한 여러 애국자들의 사례는 백미(白眉)라 할만하다. 이에 자신보다 대한민국을 더 사랑했던 분들의 이야기를 소개해 본다.

국가 공동체가 생겨나고 전쟁이 발생하면서 구성원의 공동체를 위한 특별한 헌신은 국가의 존속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다. 관창의 일화로 유명한 신라의 화랑, 왜적의 침략을 목숨으로 막아낸 이순신 장군, 병자호란으로 청에 끌려가서도 절개를 지킨 삼학사(三學士) 등 자신보다 국가를 우선시 했던 애국자들의 존재는, 수많은 외침에도 반만년 민족사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일제의 침략으로 조국의 운명이 경각에 이르자 위국헌신의 전통은 어김없이 살아났다. 명문가의 후예로써 안락한 삶을 마다한 이범진 선생은 구국운동 끝에 경술국치를 당한 이듬해 순국 자결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고자 99칸의 임청각을 비롯한 가산을 처분하고 집안 3대가 만주로 망명하여 풍찬노숙의 시련을 겪었다. 우당 이회영 선생이 6000여석의 가산을 정리하여 건립한 신흥무관학교는 약 3500여명의 독립군을 배출한 독립운동가의 산실이었다.

대일항쟁기에 이어 우리 겨레에 닥친 6·25전쟁이라는 또 다른 시련에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전쟁 발발 하루 만에 선두 전차를 파괴하여 적의 진로를 막고 전사한 김풍익 중령은 29세의 청년 장교였다. 6·25전쟁 등으로 세 아들을 조국에 바치고도 강원도의 수만평의 임야를 개간하여 상이군경의 삶의 터전을 마련해 준 조보배 여사가 평소에 했던 '국가가 있어야 자식도 있다'는 말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그대로 담겨 있다.

한편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한 외국인들의 이야기 또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다. 3·1운동 당시 일제의 포악상을 외국에 알린 스코필드 박사, ‘한국의 독립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이륭양행 운영을 통해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한 조지 루이스 쇼와 같은 분들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한편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과정 중 6·25전쟁 소식을 듣고 제2의 조국을 돕겠다며 참전·전사한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공군으로 6·25전쟁에 자원하여 임무수행 중 실종된 아들의 수색작전을 중단하라고 명령한 미 8군 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의 일화 또한 유명하다.

지면의 한계로 위의 몇 분만을 언급했지만, 독립운동가로 서훈된 분들이 현재 1만4879명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보다 대한민국의 운명을 걱정하고, 이러한 걱정을 위국헌신이라는 행동으로 옮긴 분들은 너무도 많다. 이러한 점은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수호한 분들은 물론, 외국인임에도 우리나라를 제2의 조국으로 여기며,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친 분들도 마찬가지이다.

노블레스 말라드라는 안타까운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지금, 그 반대 개념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여러 애국자들의 이야기는 더욱 반갑게 느껴지며, 우리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세월이 흐르고 가치관이 바뀜에 따라, 지금은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많은 것들이 변하는 것은 세상의 이치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국가가 존재하고 그것의 존속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가정 하에, 노블리스 오블리주, 더 정확히는 순국과 위국헌신이 주는 감동과 가치는 영원할 것이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