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래유산에 대한 서울시의 보존 인식
사설/ 미래유산에 대한 서울시의 보존 인식
  • 시정일보
  • 승인 2018.05.1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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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인간 자체는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먹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디지털 콘텐츠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아날로그적 삶이야말로 미래의 새로운 가치가 있는 대안이다.

월의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문화의 풍성한 향연이 이를 말하고 있다. 클래식, 뮤지컬, K팝, 국악 등 10월까지의 프로그램을 보면 다양한 한마당은 인간이 가지는 아날로그적 삶의 가치를 드높이는 현장이다.

또 다른 행사도 있다. 서울시가 후원하고 사단법인 국제펜클럽한국본부가 주관하는 ‘서울시민과 함께하는 문학기행’이 5월과 6월에 7회에 걸쳐 진행된다. 5월10일은 그 첫 번째로 박종화 고택, 이광수 별장 터, 석파랑, 무계원(무계정사지), 현진건 집터, 윤웅렬 별장, 윤동주 시인의 문학관, 윤동주 시인의 언덕, 창의문 등을 둘러보는 하루 일정이었다.

서울시민과 문인 45명이 김경식 사무총장(시인, 국제PEN한국본부) 안내로 진행됐다. 김 총장은 1985년부터 역사가 있는 문학기행을 연구하며 ‘서울문학지도’를 만들어 중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소개한 인물이다.

이날 답사한 시민들은 서울시가 미래유산에 대한 복안과 계획이 있는지, 아픈 질문을 한다.

세검정 상명대학교 입구 상명교를 건너면 가파른 언덕길 중턱에 춘원 이광수(1892~1950)의 별장 터가 있다. 별장 터라고 부르는 것은 지금은 그 터에 한옥이 건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문입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지금도 전망은 좋다. 춘원이 별장을 이용했던 시간을 상상하면 깊은 산중턱이었을 것이다. 춘원은 이 터에서 1935년 9월30일부터 1936년까지 조선일보에 <이차돈의 사>, <그 여자의 일생> 등을 연재하기도 했다. 춘원의 별장 터 입구에는 서울시가 안내하는 조그마한 팻말이 그날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또 다른 부암동의 현진건 작가가 살던 집터는 안평대군의 별장 터였다. 지금은 어느 부자의 별장이 되어 버렸다. 이곳은 안평대군이 꾸었다는 꿈 이야기를 듣고 그린 <몽유도원도>의 무대다. 현진건(1900~1943)이 말년에 이곳에서 닭을 키우면서 가난한 작가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자취도 없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문학기행의 시민들은 언덕 위로 올라가서 부자가 가꿔놓은 정원만 들여다보는 형편이다. 최근엔 이러한 시민들의 눈이 싫어서 집주인은 담을 높이 올리고 있는 형편이다.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은 경제적 가치로 묻는 것이 아니다. 근현대 서울을 배경으로 시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건이나 인물 또는 건물에 대한 보존은 서울시의 몫이다. 이야기가 담긴 유무형의 자산으로 비문화재이지만 미래에 전달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