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카터와 레이건
특별기고/ 카터와 레이건
  • 시정일보
  • 승인 2018.05.1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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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 (전 국방부 기획국장)
김국헌 (전 국방부 기획국장)
김국헌 (전 국방부 기획국장)

[시정일보] 미국이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탈퇴를 선언했다. 재미있는 것은 영국이 미국과 달리 이 합의를 계속 유지한다는 것이다. 영국이 항상 미국과 함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함께 하는데, 이 경우는 특이하다. 미국과 영국의 차이라기보다 메이가 트럼프와 다른 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년 카터 대통령 당시 이란이 미국 대사관을 공격, 대사관 직원을 인질로 삼았다. 미국은 진주만 공격을 받은 것과 같았고 위신은 흙탕에 굴렀다. 국민은 카터 재선을 거부하고 레이건을 새 대통령으로 뽑았다. 레이건은 레이거노믹스로 경제를 재건하고 악의 제국 소련을 멸망시켰다. 카터는 지금 집 없는 사람에게 집을 지어 짓는 봉사를 한다고 하며, 퇴임 후 존경 받는 대통령 상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북한 한국계 미국인 인질 셋을 석방했다. 트럼프는 폼페이오가 데리고 온 이들을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행사를 펼쳐 세계에 과시했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척척 들어맞는 쇼를 벌이고 있다. 공산당의 전형적인 수법, 내 것은 놓아두고 네 것 가지고 하는 협상이다.

김영삼은 집권하자 ‘민족에 우선하는 것은 없다’면서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를 송환해주었다. 학창시절에 공부는 하지 않고, 국가대사에 깊이 고민하지 않는 자들의 행태다. 말년에 IMF사태를 초래한 것이 우연이 아니다. 뒤를 이은 김대중과 노무현은 국군 포로문제는 한 번도 제기하지 않았다. 이제 종군 위안부 할머니만이 아니라, 6·25전쟁 국군 포로도 남아 있는 분이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년 북한이 NPT 탈퇴를 선언하여 1차 북핵 위기가 발생했다. 1994년 6월 카터가 북한에 들어갔다. 당시 북핵 위기가 최고조에 달하여 미국이 국부공격(surgical strike)을 준비하고 김영삼은 이를 말릴 때이다. 김일성은 카터와 대동강에서 배를 띄우고 김영삼과 정상회담을 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북한은 핵시설을 동결하고, 미국은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해주고 중유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8월 김일성이 죽어서 남북 정상회담은 성사되지 않았으나, 핵 관련 협의는 11월 제네바 미북 합의의 기초가 되고 오늘날까지 지루하게 계속되는 북핵문제 협의의 단초가 되었다. 김영삼은 생을 마감하며 당시 미국의 외과수술을 막은 것을 후회하여 정치인에게 드문 정직과 솔직함의 면모를 보였다.

북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핵무기 생산 보유 반입뿐 아니라 적재 가능한 항공기나 함선의 통과 착륙 기항을 금지하고 핵우산 제공 협약도 금지하며, 핵무기가 동원될 수 있는 일체의 군사훈련을 금지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김정일이 말한 ‘한반도 비핵화가 선대 유훈이라는 말’의 실체다. 김정은도 마찬가지인가? 트럼프는 북한이 이처럼 허무맹랑한 협상전략을 품에 두고 있음을 알고 있는가? 아니면 김정은은 이제 김일성, 김정일과 같은 그런 억지를 부릴 여유는 없고 9死에 1生을 구하기에만 급급하다고 보는가? 사정이 어려운 것은 김정은만이 아니다. 트럼프는 북핵 문제 해결의 외교적 성과를 내세워 재선에 급급하고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본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더 큰 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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