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장칼럼/ 12년간의 마포구청장을 마무리하며
단체장칼럼/ 12년간의 마포구청장을 마무리하며
  • 박홍섭 마포구청장
  • 승인 2018.06.28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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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섭 마포구청장
박홍섭 마포구청장

[시정일보]나는 마포에서 태어나 한평생 이곳에서 생활한 마포 토박이다. 뿐만 아니라 조부때부터 손자까지 5대째 살고 있다. 내가 태어난 1942년은 온 나라가 식량부족으로 고생하던 힘든 시절이었다. 3세 때 광복을 맞고, 8세 때 6.25 전쟁을, 고3 때는 4.19혁명을, 청년기는 내내 이어진 군사독재를 경험했다. 45세가 되어서야 찾아온 민주화와 10년 뒤 IMF 경제 위기까지 겪으면서 질곡의 현대사를 관통한 내 삶의 무대는 언제나 마포였다.

가난했던 대학 시절, 나는 마포에서 명륜동까지 걸어 다니며 노동법을 공부했다. 통금에 가까운 시간이 되면 공덕시장 한구석에 찐 고구마 몇 개와 꽁치 토막을 놓고 행상을 하는 아주머니와 어린 소녀들을 보며 다짐했다. ‘게을러서도 안 되고 무력해서도 안 되고 현실과 비굴하게 타협해서도 안 된다. 힘없고 착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희망을 일으켜 세워주어야 한다.’고

그런 마음을 담아 대학 졸업 후에는 소외받는 이웃과 고통 받는 근로자를 대변하기 위해 노동운동의 일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최상부 조직인 한국노총에 몸담으면서도 ‘정의로운 사회’, ‘평등한 사회’에 대한 목마름은 깊었다. 그래서 민주화를 앞당길 수 있는 기대감과 노동자를 위한 입지를 마련하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 뒤 통일민주당 노동정책연구소 상임부위원장,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을 거치면서 2002년 민선3기 마포구청장을 시작으로 내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됐다.

마포는 과거 개발시대에 다른 지역에 밀려 발전에서 뒤쳐졌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개발됐다. 각종 기반시설이 확충되고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 경제적 효과를 거두고 강남북 격차 해소를 위한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면서 주거환경이 크게 개선됐다.

그러나 외형적으로 성장한 만큼, 내면에는 오히려 이웃과의 공동체 의식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민선5기에는 더불어 잘 사는 복지 마포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정한 복지는 물질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문화를 통해 구민의 자존감과 품격을 높여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함께 꿈꾸는 마포, 교육문화도시로 가자!’로 출발한 민선6기는 그런 맥락에서 시작됐다. 이를 위해 행정의 중심을 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청소년들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교육과 문화에 방점을 두고 힘차게 달려왔다.

마포중앙도서관 건립과 마포인재육성장학재단, 경의선 책거리 조성, 마포아트센터 문화동 증축 등 문화 인프라 확충 및 문화공동체 활성화를 통해 주민 모두가 일상 곳곳에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경의선 숲길공원 조성으로 부족한 녹지공간을 확충하고, 푸르메재단 어린이재활병원과 마포구민체육센터, 주민편익시설 등을 건립해 구민 건강과 복지 증진에 앞장섰다.

때론 갈등과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행정민원이 복잡하고 다양해짐에 따라 지역주민간의 대립과 갈등이 거세지기도 하고, 구가 추진하는 사업 중에는 외부기관의 협조에 의해 추진여부와 방향이 결정되는 어려움도 있었다. 그 기간은 오로지 마포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고민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지지하고 응원해주신 지역 주민과 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최선을 다한 구 직원들의 노력이 컸다.

해마다 신록과 녹음, 단풍의 변화를 보면서 인간사 역시 저런 과정의 연속이 아닐까 생각한다.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지난날을 회상하면 내가 한 곳에 뿌리를 내리는 나무가 아닐까 싶다. 묵묵히 한곳에서 마포의 변천사를 온몸으로 겪은 나무처럼, 남은 바람이 있다면 남과 북이 통일되어 공덕역에서 KTX를 타고 북으로 가는 꿈을 이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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