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한마디 /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독립의 빛’
나도한마디 /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독립의 빛’
  • 시정일보
  • 승인 2018.08.09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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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기 (서울지방보훈청 보상과)

 

[시정일보]제2차 세계대전이 점차 연합국의 우세로 기울어지던 1943년. 연합국의 세 수뇌인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의 처칠 수상, 중화민국의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이집트 카이로에서 만난다. 2차례의 회담 후에 합의된 ‘카이로 선언(Cairo Declaration)'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독립이 언급된다. 특별조항에 “현재 한국민이 노예상태 아래 놓여 있음을 유의하여 앞으로 적절한 절차에 따라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줄 것이다.”라고 결의한다. 이후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는 신탁통치에 대한 내용이 거론되고, 1945년 7월 포츠담선언에서는 카이로선언의 내용이 재확인된다. 1945년 8월6일 일본의 나가사키[長崎]·히로시마[廣島]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8월9일 얄타협정에 따라 러시아가 대일선전포고를 하면서 38선 전역을 점령하게 된다. 이에 미국은 러시아의 남하를 우려하여 38선 분할안을 제기하게 되고, 결국 8월15일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다.

이렇게 우리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본제국주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외세의 힘에 의해 광복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던 요인 가운데 하나이고, 우리 스스로의 노력이 없었다면 쉽게 광복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1919년 3·1운동에서 독립에 대한 우리의 염원을 만방에 알렸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여 독립운동을 보다 체계적으로 전개하는 틀을 만들었다. 그리고 만주와 간도지방에서는 신흥무관학교 등에서 배출된 독립군을 중심으로 무장투쟁을 펼치면서 보다 강력한 독립 의지를 보여주었으며, 민족주의 노선과 사회주의 노선으로 양분된 독립운동 세력을 통합하기 위해 신간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강화되고 제국주의 침략이 가속화되었지만 우리민족 독립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1940년 9월 광복군의 창설이었다. 대일선전포고와 함께 연합국의 일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광복군은 국내진공작전을 준비하는 등 다각적인 대일항쟁을 전개했다. 이렇듯 독립에 대한 우리의 열망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다.

어느덧 광복 73주년이다. 1945년의 날씨도 이렇게 더웠을지 모르지만, 광복에 대한 의지는 정말 뜨거웠을 것이다. 그 뜨거운 의지로 이뤄낸 광복을 맞이하면서 이 땅에 내려진 독립의 빛이 꺼지지 않고 계속 비출 수 있도록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는 물론 이름 모를 많은 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평화적 통일을 이루어내는 것이 진정한 광복을 완성하는 것이다. 평화적 통일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독립에 대한 하나하나의 노력이 모여 결국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처럼,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지만 평화적 통일에 대한 우리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광복절에는 통일된 한반도에 백두에서 한라까지 독립의 빛이 온전히 내리는 그 날은 과연 어떨까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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