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정책과 전략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특별기고/ 정책과 전략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 김국헌 전 국방부 기획국장
  • 승인 2018.10.11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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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 전 국방부 기획국장

[시정일보]정부 정책은 관련부처 협의를 통해 결정된다. 청와대는 조정할 뿐이다. 항상 최악의 안보상황을 상정하는 국방부, 한미관계를 중시하는 외교부와 대북관계를 증진시키고자 하는 통일부에 어느 정도의 길강이 있는 것은 불가피하다. 정부 부처 협의는 국장급 실무회의로부터 시작하여 차관보 협의에서 실질적인 조정이 이루어지고, 차관회의에서 사실상 결정되며, 장관들은 이를 추인하는 선에 그치는 것이 보통이다. 청와대는 협의과정을 조정하는 데 치중하며 어느 입장에 치우치지 않도록 유의한다. 이러한 안보회의 운영은 김종휘 안보 수석이 기본을 잡았으며, 좌파 정부의 이종석 등도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NLL은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에 규정된 선이 아니며, 7월30일 유엔군 사령관이 유엔군 해군의 북상을 제한한 선이다. 6.25가 터진 지 며칠 만에 북한 해군은 전멸했다. 그 후 북한에는 해군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서 북한도 별 수 없이 NLL을 지켜왔다. 1970년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구축한 에일라트를 침몰시킨 스틱스 미사일 도입 이후 서해 도발이 시작되었다.

국군은 이에 대해 하푼 미사일 도입으로 북한 해군을 상대했다. 이것이 분명하게 발휘된 것이 연평해전이었다. 여기에 보복하려고 북한이 도발한 것이 2002년 서해 교전이며, 우리는 고속정 한 척이 격침되었으나 추후 북한의 손해를 확인한 결과 북한 해군은 더 손해를 입은 것이 밝혀졌다. 이래로 서해 교전은 제2연평해전으로 불리고 있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기억이 새로운데,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에서 한일 공동 월드컵에 참석하고 있는 가운데 벌어진 도발이었다. 이 도발은 북한은 철저히 믿을 수 없는 집단이라는 것을 다시 각인시켰다.

조성태 장관은 국회에서 NLL을 MDL과 같은 성격의 엄격한 남북 해양 경계선으로 규정지었다. 문재인-송영무의 남북군사합의는 이 모든 노력을 무위로 돌리는 것이며, 북한으로서는 손 안대고 코 풀게 되었다.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이들을 관철하고자 했던 김영철 등이 환호작약하는 것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인다.

현재 국방부는 비무장지대 공사 관련해서 유엔사와 협의를 거쳤다고 하는데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협의가 아니라 합의가 되어야 한다. 그것도 반드시 문서로 되어야 한다. 여기에 철저한 것이 북한이다. 이러저러한 것이 북한 입장이 아니었느냐고 물으면 그에 관한 문서를 가져와 보라고 버틴다. 이 원칙은 한미 간에도 적용된다. 2002년 국방부는 북한과 철도 도로 연결 작업 협의를 시작하기 전, 이에 관련해서 국방부가 유엔사를 대리한다는 약속을 유엔군 사령관에 문서로 요구했다. 라포트 장군은 이를 승인하는 서한을 써주었다. 군비통제관은 이를 근거로 북한과의 협상에 나설 수 있었다. 비무장지대의 관할권과 관리권의 세부 조항에 관해서도 군비통제관이 장관의 승인을 받고 솔리건 유엔사 부참모장에 써주어서 문제가 풀리게 되었다.

오늘의 문제는 백면서생들이 안보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안보실은 참모기구다. 협상은 국방부에서 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던 이종석 실장도 국방부에 부탁했지, 직접 나서서 북한과 협상하지는 않았다. 지금의 청와대 안보실은 이러한 절차가 있었다는 자체도 모르는 것 같다. 이번 협상을 주도한 군비통제 비서관이 하는 짓은 외국에서 공부한 백면서생들의 소행에 불과하다. 이들을 국방부에 정책 자문위원으로 데려다가 현실을 보여주고 가르쳐서 써야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합참 작전본부장을 지냈던 3성 장군과 포병 대령 출신 박사를 붙여 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는 언론은 참으로 한심하다. 이것도 토론이라고 국민에 보라고 하는가? 이번 기회에 우리 군의 장비와 작전개념에 대해서 자상한 정보를 제공한 신원식 장군을 치하하며, 국민은 이를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를 질타해서 잘못되어가는 안보 상황을 바로잡아 줄 것을 기대한다. 김영철도 TV를 보고 남쪽의 장단과 강약, 여러 가지를 느꼈을 것이다.

정책과 전략에 관계하는 사람들은 이 모든 역사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