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고 / 다시 돌아보는 공직, 그리고 공직자
기 고 / 다시 돌아보는 공직, 그리고 공직자
  • 양승렬 과장
  • 승인 2019.01.03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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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렬 마포구보건소 위생과 과장

 

양승렬 과장

[시정일보]이제는 빛의 시대라 당치 않지만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일선 지방공무원으로 있으면서 늘 불온한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나 스스로에게 불만이기도 하고 “됐어 이 친구야 고만해, 네가 뭐 대단하다 그래, 너나 잘 해”, 네가 무슨 헨리 지킬(Henry Jekyll) 박사와 에드워드 하이드(Edward Hyde)라도 돼? 자조하기도 한다. 인간의 몸에 선과 악, 두 가지의 본능이 있다고 했다.

공직에 들어오기 전 굴뚝 높은 사기업에서, 공직에 입문해서는 대부분을 구 본청에서, 시청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면 격했던 현장, 그 소화되지 않은 기억들이 고스란히 되새김질돼 스스로의 염치를 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내 사업이라면, 내가 사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나?” 자연스레 직장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광속으로 급변하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미래가 보장되지 못하는 글로벌 자유시장경제 체재에서 자기 사업을 한다는 것은 한시도 다리 뻗고 자지 못하는 스트레스의 연속일 것, 잠깐 방심하는 사이 종업원의 급여를 주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한 유능한 젊은이들이 공직에 들어오면 날이 갈수록 피동적으로 변하는 이유가 뭘까? 책상에 줄긋고 짝꿍 필기구 넘어오지 못하게 부라리던 초등학생의 치기처럼 구분 짓는 파티션 문화, 팀 간·부서 간 이기주의·공무원의 무기는 규정과 권한인데 그것의 존재에 너무 의존하는 것은 아닐까?

민간부분 특히 사기업처럼 과정의 정량화, 결과의 수치화를 통해 개인별·부서별 성과 평과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재계약하는 서바이벌 환경은 아니더라도 접시를 깨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이들을 해고할 수 있는 장치는 없는 것일까? 그동안 관대했던 직무태만에 대해 감사의 초점을 맞춰 공직에서 배제하는 것이 시대정신 아닐까?

공직은 법에 의하여 규율되는 시민들의 생활관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만큼 태생적으로 곱지 않은 시선에 묶일 수밖에 없다. 공권력을 배경으로 국민의 의사와 형편을 무시하고 독선적·획일적·고압적인 공급자 위주의 행정 행태를 국민들은 '관료적이다'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는 사명감 이전에 급여를 받는 월급쟁이다. 최소한 봉급에 부끄럽지는 않아야 한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직급이 높을수록, 월급이 많을수록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한다. 팀장은 팀장답게, 과장은 과장답게 국장은 국장답게.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보이고, 하기 싫은 일에는 핑계가 보인다”

“전봇대 하나 옮기는데 몇 달씩 걸려서야” 이런 대통령의 푸념이 회자된 적이 있었다. 부처 간, 사인 간 법적 문제, 이해관계가 있어 그리 쉽지 않다고는 하지만, 국민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공무원들의 보신주의와 책상머리와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것이다. 변화를 읽지 못하고 타성에 안주해 있다 보면 ‘날 선 칼에 동물의 피를 묻히고 얼려 세워둔 에스키모 인들의 칼날을 핥다가 결국은 혀를 베 죽는 늑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였다. 어려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일부러 자리를 옮긴다든지, 새로 학습해야 하는 것을 후임자에게 미루는 행태는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역지사지다. 그것이 배려의 시작이다. 존중받으려면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노블레스 오블리주! 진정한 리더는 궂은일에서 진자리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자 아닐까? 악성 민원인이 왔는데도 못 본채 하는 상사, ‘당신이 나의 구루입니다’는 아니더라도 팀원으로부터 길잡이 요청이 아예 들어오지 않는 상사, 되레 없는 게 낫다는 원성이 자자한 상사· 현장에서 터득한 산지식은 수천 권의 독서로도 압축식 과외로도 획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다양한 경험을 살려 후배들에게 텍스트에 없는 지혜를 이어줘야 한다.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홍역을 단단히 치르고 있다. 다가오는 새해 황금돼지띠에는 공평보다는 공정한 사회가 되기를 그래서 ‘이기면 말할 수 없이 기쁘고, 지더라도 또한 즐거운’ 더불어 함께하는 우리가 되기를, 그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공직자이기를 소망한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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