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대한민국, 지방이양일괄법 가질 시기 왔다
신년기획/ 대한민국, 지방이양일괄법 가질 시기 왔다
  • 문명혜
  • 승인 2019.01.03 13:38
  • 댓글 0

지방이양일괄법을 바라본다
지난 12월17일 국회 정론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국 시장 군수 구청장들이 ‘지방이양일괄법’을 연내 통과시킬 것을 국회에 촉구하고 있다.
지난 12월17일 국회 정론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국 시장 군수 구청장들이 ‘지방이양일괄법’을 연내 통과시킬 것을 국회에 촉구하고 있다.

 

[시정일보] 기해년 아침 해가 대한민국 국운상승을 예고하듯 힘차게 떠올랐다.

다사다난했던 무술년에는 통일 기운이 한반도를 뒤덮었다. 4월부터 9월까지 반 년동안 남북 두정상이 세차례나 만나 한민족의 항구적 평화와 공동번영의 미래를 논의했으니 국민들 가슴에 우리도 머지않아 통일독일의 뒤를 밟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된 해였다.

해를 넘기기 2주일 전인 12월17일 국회정론관 발 특별 사진이 송출됐다. 집권당 소속 시장 군수 구청장들이 ‘지방이양일괄법’을 연내에 통과시킬 것을 국회에 촉구하는 모습이었다.

민주주의 척도이자 한 국가의 국제적 위상을 가늠하는 기준이기도 한 지방자치. ‘지방이양일괄법’은 분권형 개헌에 이어 지방자치 발전 법제화의 큰 줄기로, 반드시 넘어야 할 산으로 꼽힌다.

지방자치 발전을 사시로 삼고 있는 본지 역시 지방이양일괄법의 중요성을 십분 이해하고 있던 터에 이 문제를 독자들과 숙의하며 기해년 새 아침을 열고자 한다.               -편집자주-

 

지난해 11월23일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지방이양일괄법’ 제정안이 통과되자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언론들은 일제히 환영을 표하고 국회를 향해 서둘러서 통과시킬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4일이 지난 12월17일 국회 정론관에서는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기초단체장들이 지방이양일괄법의 연내처리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낭독했다.

두 장면은 지방이양일괄법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촉발시키고 지방자치관계자들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23년 지방자치에도 여전한 불균형

지방이양일괄법은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사무이양이 결정됐지만 실행하지 못한 사무들을 하나로 묶어 한번에 이양시키는 내용을 담은 법률을 말한다.

긴 왕조의 역사, 20세기 중반에야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 5.16 군사정부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리더십이 30년 동안이나 지속된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는 요원할 수밖에 없었다.

용케도 지방자치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정치인의 주도로 뿌리내리기 시작한 대한민국 지방자치는 과거의 중앙집권적 관성과 지방자치 확대를 통한 미래로의 도약이 아직도 충돌하는 형국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해소를 통한 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 제고의 필수요건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지방자치는 지방정부 수장을 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선출하는 본격시대가 막을 올린지 23년이 지났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수도권의 비대화만 있을 뿐 개선조짐이 없는 지방과의 격차, 이로 인한 국가발전의 지체가 여전히 화두로 남아있다는 게 역설적으로 지방이양일괄법이 하루바삐 입법부 문턱을 넘어야 된다는 당위를 웅변하고 있다.

 

국회 문턱 못넘은 실패의 역사

지방분권의 실질적 내용이라 할 수 있는 국가사무 지방이양은 1999년 8월 대통령 직속 지방이양추진위원회가 설치되면서 일대 전기가 조성되고 20년 동안 꾸준히 진행돼 왔다.

정권마다 이름을 바꿔왔고, 현 정부 들어 자치분권위원회로 활동하는 위원회는 이양대상 사무를 발굴해 중앙부처와 자치단체의 의견을 조율하고 전문가, 공무원 기타 관계자와 의견을 조율한 후 최종적으로 이양 여부를 결정한다.

물론 위원회는 이양에 대한 심의만 할 뿐이고 대통령의 결제를 받고 해당부처에 통보해 정부발의든 의원발의든 법률안을 만들어 국회에 상정해 통과되면 사무이양 절차가 마무리되는 것인데 중간에 해당 부처에서 법률안을 거부하면 위원회의 노력은 허사가 되고 만다.

위원회의 활동은 강제성도 없고 실효성도 크지 않지만 정부내에 위원회 외에는 국가사무의 지방이양을 이끌어 나갈 조직이 따로 없기 때문에 지난 20년 동안 1982개의 사무가 지방으로 이전된 것은 전적으로 위원회의 공이었고, 앞으로도 800개가 넘는 사무가 지방이양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지방으로의 사무이양이 부처별로 이뤄지다보니 행정력 낭비와 지연 등의 문제가 생겨나 미이양 사무를 하나로 묶어 일괄이양하는 방안이 추진됐는데 이것이 바로 ‘지방이양일괄법’이다.

지방이양일괄법 추진은 2004년에 13개 부처에 해당하는 49개 법률, 227개 사무를 모아 국회에 제출한 게 효시였는데 국회법상 상임위원회별로 나눠진 법안심의권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거부됐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가 임기인 18대 국회에서도 950개가 넘는 이양사무를 묶어 지방이양일괄법을 제출했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19대 국회는 633개 이양사무를 모은 지방이양일괄법에 대해 그동안 고수해 오던 ‘소관주의 위배’를 버리는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긴 했지만 의안을 심사하는 지방자치발전특별위원회에 법률안 심사권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무산시켰다.

이번 20대 국회에서도 지방재정분권특별위원회가 구성되기는 했지만 지방이양과 연관된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하고 활동기간을 종료했다.

14년에 걸친 지방이양일괄법의 역사를 간단히 정리하면 정부가 땀흘려 만든 법률안을 국회가 거부한 것으로 귀결되는데, 돌이켜보면 국회가 과연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지방이양일괄법 중요성 식지 않아

지방이양일괄법을 성공적으로 통과시킨 사례로 일본과 프랑스가 꼽힌다. 일본은 1999년 <지방분권 추진을 위한 관계 법률의 정비 등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킨 후 총 8회에 걸쳐 시행해 자치분권의 가속도를 내고 있다.

의회 내에서 전문가가 장기간 연구를 해 졸속입법 우려를 불식시키고 일정한 조건하에서 중앙정부의 개입을 허용하는 한편, 지방정부의 조례입법권에 대한 행정지도를 강화하는 방법을 동원해 안착시킨 경우다.

프랑스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사무이양 비용평가위원회를 구성하고 비용증감 평가와 재정지원 협의, 지출내역 등을 지속적으로 주시하며 국가사무 일괄이양을 성공시켜 왔다.

두 선진국의 사례는 우리 지방이양일괄법의 벤치마킹 대상이자 이정표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지방이양일괄법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남아있다.

수십개의 법률을 하나로 엮어서 심의하게 되면 졸속입법이 될 가능성이 많고, 중복투자로 인력과 재원의 낭비가 심화될 것이라는 게 지방이양일괄법 반대의 주요 논거다.

국가사무의 지방이양이 오랫동안 지속돼 온 결과 미이양 사무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지방이양일괄법의 중요성은 줄지 않았다는데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십여년간 피땀을 쏟은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앞으로의 국가사무 지방이양도 옛날 ‘완행열차식’ 그대로라는 것이다.

일본과 프랑스가 능히 해냈고 독일도 <법률개정법률>이라는 입법기술을 사용해 여러개의 법률을 한번에 통과시키는 예가 허다한데 우리는 아직도 일괄이양법을 통과시킨 적이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 정부는 과거 ‘일만 시키고 돈은 안주는’ 방식에서 탈피해 재정지원도 병행하겠다는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지방이양일괄법 제정에 적극성을 갖고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번 국회에서 과연 지방이양일괄법이 통과될 수 있을지 수많은 국민들과 지방자치관계자, 특히 모든 역량을 쏟아 법안을 만들어낸 관계공무원들의 시선이 입법부를 향하고 있다.

문명혜 기자 / myong5114@daum.net

 

기자가 본 지방이양 사무 역사/ 정권 색깔 따라 요동

지방자치제를 말할 때 첫 번째로 언급해야 할 인물은 DJ일 수밖에 없다.

1990년 10월 지방자치제 전면실시를 관철시키기 위해 무기한 단식투쟁에 나서 ‘노태우 정권 중간평가 유보’라는 정치적 선물과 맞교환한 것이 현 지방자치제의 기원이니, DJ가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설립자라는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그로부터 8년 후 국민의 정부 수장이 된 DJ는 지방자치 설립자답게 지방분권에도 굵은 획을 그었다.

대통령 취임 2년차인 1999년 8월 대통령소속 첫 공식기구인 ‘지방이양추진위원회’가 출범했는데 이 기구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가사무 지방이양의 ‘원 톱’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 지방이양 실적은 위원회가 확정한 612개 사무중 2개를 뺀 610개를 이양완료했는데 이양률로만 보면 99.7%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도이전을 공약하고 행정부 수반에 오른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두달만에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를 설치하고 공공기관의 대대적인 지방이전과 함께 중앙정부의 권한과 재정까지 지방에 넘겨주려 애썼다.

참여정부 위원회는 902건의 이양사무 대상을 정하고 94.9%인 856건의 이양실적을 냈다. 비율로는 국민의 정부에 이어 2위지만 내용과 질로 보면 역대 최고로 꼽힌다.

10년 만에 보수정권을 세운 이명박 정부는 2008년 12월 ‘지방분권촉진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위원회의 위상을 축소시켰고,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발전에 다소 무관심한 태도를 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 하의 위원회는 역대정권 중 가장 많은 1587건의 이양사무를 정했지만 이양완료된 사무는 32.5%인 516건에 불과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8개월 후인 2013년 10월에 ‘지방자치발전위원회’를 설치했지만 지방이양 부문에서 특별히 언급할 내용이 없다.

박근혜 정부 하 위원회는 ‘간신히’ 114건의 이양대상을 확정했지만 대통령이 재가하지 못했으니 이양완료 실적은 당연히 ‘제로’이고, 훗날 지방자치사를 논할 때 낯 뜨거운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지이자 참여정부의 계승자로 불리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0개월째인 작년 3월에 ‘자치분권위원회’를 설치했는데, 19개 부처 소관 66개 법률의 571개 사무를 담아 ‘지방이양일괄법’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고 답을 기다리는 중이다.

국가사무의 지방이양은 정권의 색깔에 따라 극심하게 요동쳐온 게 현재까지의 경험칙으로, 공교롭게도 정확히 10년 주기로 진보정권 때는 활활 타오르다 보수정권 때는 사그러드는 양태를 보여왔다.

지방이양대상 사무는 총 3101건이었는데 행정환경의 변화를 반영해 최근엔 2800여건으로 줄어들었고, 2012년까지 1982건은 이양완료, 800여건은 미이양 상태로 남아있다.

문재인 정부는 연방제 수준의 지방자치를 하겠다고 공언한 정권으로 임기동안 강력한 지방분권 드라이브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지만 입법부의 벽을 넘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문명혜 기자 / myong5114@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