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의 시대, 사회적비용이 너무 크다
폭로의 시대, 사회적비용이 너무 크다
  • 시정일보
  • 승인 2019.01.10 17: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정일보] ‘한 방의 폭로’가 한국사회를 흔들고 있다. 김태우 수사관과 신재민사무관의 폭로는 모든 뉴스의 블랙홀이 되어버렸다. 그들의 폭로는 청와대의 정무수석, 비서실장을 국회에 출석,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게 만들었다. 국민들은 이 같은 폭로의 실상에 분열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폭로의 역사는 루소식의 ‘고백록’이 근대사회에 이르러 확립된 형식이라는 주장도 있다. 고백에 부여되었던 ‘낭만적 의미’가 변이되어 ‘폭로’라는 형식으로 옮겨졌다.

폭로행위 자체에 낭만적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공익적 의도를 자처하는 어떠한 사심도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폭로가 공익적 의도를 뛰어 넘어 사적인 감정과 개인의 안위를 위한 것이라면 사회적 비용은 너무 크다.

미국에서 워터게이트 폭로 사건은 대통령 퇴진을 불러올 만큼, ‘한 방의 파괴력’은 가공할만했다. 폭로에는 크고 작던 명암이 있기 마련이다.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내 이를 개선하는 계기로 작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 하는 것은 물론,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을 배재 할 수 없다. 이에 공익적인 폭로의 순기능과 함께 역기능에 대한 우려는 우리사회의 중요한 논쟁이 되고 있다.

1992년 장병들에게 여당 후보를 찍도록 강요한 군의 부정 선거행위를 폭로한 중위가 있었다. 그의 폭로는 법이 바뀌고 모든 군인들이 영외로 나와 비밀 투표를 하게 되는 순기능도 있다.
서지헌 검사와 최영미 시인, 연극 연출가 이윤택씨의 성폭력을 폭로한 홍선주씨의 경우는 순기능으로 발전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전혀 상관없는 미투의 고발 고소가 이를  말한다. 가수 김흥국씨는 미투에 말려 소송까지 갔다. 재판결과 김씨는 무죄를 받았으나 방송 컴백은 그다지 쉽지 않는 피해자로 기록된다.

물론 조직의 병폐가 폭로 없이 자정의 노력으로 해결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 여러 경우에서 나타난다. ‘부패방지법’이니 ‘공익신고자보호법‘은 날로 진화했다. 그러나 법에 담길 취지를 살릴 ’의지‘는 진화되지 못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내부제보를 처리하는 주무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조사권은 없다. 권익위원회에 들어온 사건은 해당 기관으로 보내진다. 쉽게 말하여 나의 고발을 내가 검토하는 경우가 된다. 팔은 안으로 굽는 다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의 폭로는 물론 폭로자의 잘못에 대해 보다 관용적이고 성숙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 성숙한 태도를 확보할 수 있는 원칙은 어렵지 않다. 폭로가 있는 후 폭로자의 당사자의 반론과 재반론자의 반론과 재반론을 경청하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정의는 속도가 아닌 정확성이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폭로라는 용기를 사회의 순기능로만 사용되어야한다.

확인되지 않는 사실을 정치적 목적달성을 위해 마녀 사냥 식으로 폭로하는 행위는 사회의 갈등만 유발하는 우려로 남는다. 폭로를 대하는 성숙한 태도는 시민의식을 한 걸음, 발전의 계기가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