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살아 숨 쉬는 ‘팍스로마’ 영광의 이야기
곳곳에 살아 숨 쉬는 ‘팍스로마’ 영광의 이야기
  • 시정일보
  • 승인 2007.01.2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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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당한 매력 덩어리 ‘로마’
2. 물의 도시 베니스
3. 서울, 1200만 외국관광객 가능성은


서울시는 민선4기 정책목표 중 하나를 ‘외국인관광객 1200만 유치’로 정했다. 한강을 ‘다시’ 개발하고, 관광마케팅을 전담할 가칭 관광공사를 올 8월 설립 예정이다. 이런 목표는 그러나 한계가 있다.
서울, 나아가 한국의 경우 외국인관광객의 혼을 빼낼 만한 재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위압하는 만리장성이나 자금성도 없고, 서양문명과 문화의 원류가 된 그리스·로마의 유적도 없다.
본지 방용식 기자가 작년 12월25일부터 31일까지 5박7일간 일정으로 ‘관광대국’ 이탈리아를 방문, 그 가능성을 짚어봤다.


2006년 12월26일 로마시내로 나섰다. 전날, 공항에 도착해 숙소로 이동하면서 밤하늘 가득 빛나는 별이 주는 감동이 채 가시지 않았다.
로마는 B.C. 753년 세워졌다. 2700년이 넘는다.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느껴지는 무게는 무시할 수가 없었다.

2700년 역사, 매력 덩어리

로마는 역시 ‘매력 덩어리'였다. 2700년 역사를 ‘도시 속에'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테베(Tevere)강에서는 로뮬루스와 레뮤스 형제의 전설이 떠올랐다. 1861년 통일 이탈리아의 영웅 가리발디의 동상이 있는 지아니콜로 언덕, 170년간 건립했다는 상트피에트로성당에서는 로마시내가 한 눈에 보였다.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에서는 인간의 끝없는 재미추구로 당초 극장에서 ‘인간살육'의 도살장으로 전락했고 결국 그 원한이 맺혀 1400여년이 지나 3층 절반 이상을 상트피에트로성당 건축자재로 내줘야 했던, ‘공평한’세상의 원칙이 생각났다. 극단적인 호모루덴스(Homo Ludens)의 말로였으리라. 또 스페인광장과 성삼위일체성당, 판테온신전, 상트안젤로성당, 트레비분수, 나보나광장 등 일일이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던 역사유적은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정작 ‘숫자'뿐인 한국과 서울을 떠올리게 했다.
로마의 공공건물은 규모와는 상관없이 모두 광장을 가지고 있었다. 지도자와 정치체제에 따라 때로는 의사수렴의 공간으로, 공포정치의 암울했던 기억의 공간으로 때로는 그 역할이 달랐겠지만 2006년 12월26일 로마의 광장들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과거 여의도에 있던 5.16광장을 ‘군사적인' 냄새가 난다해서 없애버린 우리의 기억과 비교됐다.

개인보다 공동을, ‘SPQR’

로마는 개인이 아닌 공동의 이익을 위한 도시였다. <로마인이야기> 15권을 최근 완간한 시오노나나미는 “나는 로마를 사랑한다. 로마는 어느 한 독재자 개인을 위한 건축물이 없다. 독재자들은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기 위해 목욕탕이나 신전 같은 건물을 지었다”고 말했다.
공공을 위한 자신의 희생. 이는 로마시내 유적지의 곳곳에서 잘 나타났다. 분수의 머릿돌에는 하나같이 ‘SPQR'이라 적혀 있었다. Senatus Populus Que Romanus. 즉 로마를 위한 원로원과 민회라는 뜻으로 동전이나 깃발, 방패는 물론 현재는 배수구 뚜껑이나 버스에도 이 문자가 표시돼 있다.
공공이익이 우선하는 이런 풍토는 도시의 빛깔로 나타났다. 이는 관광객 유치를 위한 정책의 산물로 보였다. 서울의 자유분방한 건물형태와 색과 달리 로마의 건물은 10층을 넘지 않았다. 그 빛깔은 연하거나 진한 황토색이었고 창은 아치형이거나 짧은 첨탑형이었다. 획일적인 과거지향성(Oriented the old)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57세의 호텔리어 Benedetti씨는 “로마는 가장 역사적인 장소지만, 살기에는 좋지 않은 도시이다"고 말했다.

리모델링도 관광상품

로마에서 근대적인 도시계획은 100년 전에 시작됐고 주로 무솔리니 통치시절인 1930년대가 대부분이다. 또 로마에서는 도시개발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땅 속 유적 때문이다. G7 회원국인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 한국의 전철격인 메트로가 A, B 2개 노선 밖에 없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대신 리모델링을 통해 생활의 편리를 추구한다. 리모델링은 면세대상이며 30년 이상 걸리는 것도 있다고 한다. 1953년 소피아 로렌과 그레고리 팩이 주연한 <로마의 휴일> 때와 50여 년이 경과한 2006년이 별 차이가 없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한, 두 달이면 ‘뚝딱'하고 도깨비 방망이를 두드리듯 건물 하나를 완성하는 한국인들의 실력에서는 희한한 일이지만 말이다.
로마의 1년 관광객은 6000만에서 7000만 명이다. 이탈리아의 인구는 5700만 명. 끝없이 많은 문화유적과 ‘과거지향성'이 이런 걸 가능하게 했다. 상황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원칙을 정하고, 이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은 서울에서도 검토해 볼만한 일이다.
<로마 = 방용식 기자>


로마는 불편했다

이태리어 안내표지판
외국인 배려 ‘아쉬워’

로마는 불편했다. 외국인, 특히 동양인에게는 그리 살갑게 다가오지 않는다. 전철이나 버스, 역 같은 곳에는 온통 현지어(現地語) 뿐이다. 버스의 경우 노선안내도는 물론 안내방송도 없었다. 이 것도 이탈리아어로 했겠지만.
도로는 다른 유럽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가로×세로 10㎝의 벽돌을 깔아 울퉁불퉁했다.
중앙선을 제외한 차선은 별로 없었고 도로 폭은 좁았다. 그런데도 차량속도가 제법 빨랐다.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멀미마저 느꼈다. 알아서 운전하는 사람들의 ‘능력’이 대단할 뿐이었다.
이렇듯 로마의 외국인 배려는 낙제 점수였다. 문화적 오만이 아닐까. 보고 싶으면 불편하더라도 오라 식의. 오만할 수 있을 만큼 ‘당당할 수밖에 없는’ 로마가 부러웠다.
로마인들에게 ‘반드시 배울 건’ 있다. 바로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로마에서 기자는 자동차 경적소리를 대여섯 번 밖에 듣지 못했다. 차도로 사람이 건널 때도 자동차는 다 건너기를 얌전히 기다렸고, 끼어드는 차에게는 양보를 했다. 어떤 이는 ‘인본주의(人本主義)’의 전통이라고 했다. 사람 나고, 차 났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