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5월에는 가족윤리를 다시 생각해 보자
금년 5월에는 가족윤리를 다시 생각해 보자
  • 임수환 박사
  • 승인 2019.05.0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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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환(정치학 박사)
임수환 박사
임수환 박사

[시정일보] 5월이 오면 꽃이 피고 봄 바람도 잦아들어 나들이하기 좋다. 5일은 어린이날이라 아이들 데리고 야외에 나가고 8일이면 어버이날 꽃을 들고 부모님을 찾아 뵙는다. 누군가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에 날짜를 정해 놓았던 게다.

어린이날은 왜정 때 민간단체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조선소년운동협회가 1923년 5월 1일 제1회 어린이날 행사를 개최한 이래 연례행사로 1937년까지 이어지다가 일제의 소년단체 해산으로 중단된 후 1946년부터 5월 5일로 날짜를 변경하여 재개되었다.

1920년대 초 천도교 지식인들은 3.1운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제에 체포되고 사살된 고통을 딛고 여러 가지 문화활동을 벌였는데, 그 중 하나가 천도교 소년회을 중심으로 하는 소년운동이었다. 그들은 유교적 질서의 영향으로 아이들을 천시하는 우리문화의 악습을 개선하기 위해 아이, 계집아이로 불리던 아동들을 어린이라는 용어로 부르며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자는 운동을 펼쳤다. 어린이가 밝게 자라야 우리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는 일깨움이었다.

애초 어머니날의 전통은 앤 자비스라는 이름의 미국여성이 1868년 ‘어머니들의 우정의 날’을 만들어 3년 전에 끝난 남북전쟁의 상처를 위로하는데에서 기원한다. ‘어머니들의 우정의 날’을 창시한 앤 자비스가 사망하자 그녀의 딸 애나가 ‘어머니를 기억하는 모임’으로 이어갔다. 1914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전사한 아들을 둔 어머니들의 노고를 기리는 날”로 정하겠다고 선언했고, 1934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어머니날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한국정부는 6.25전쟁 휴전 3년 후인 1956년에 어머니날을 제정했다. 전쟁미망인들의 슬픔과 혼자 힘으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었다.

우리정부는 1973년 어머니날을 어버이날로 바꾸었다. 어버이날로 지정하는 이유는 “어버이 은혜에 감사하고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는 전통적 미덕을 기리며, 산업화·도시화·핵가족화로 퇴조해 가는 어른 봉양과 경로사상을 확산하는 계기로 삼기 위함이다”라고 밝혔다.

1973년이면 전후복구를 지나 산업화가 활발히 진행되던 시기로서 이제 전쟁의 상처를 어루만지기보다 산업사회 도래에 따른 새로운 사회적 문제들에 대처해야 할 시점이었다. 정부가 제시한 지정이유에는 개인주의와 물질문명의 득세에 따라 전통적 가족윤리가 퇴조하는 문제에 대한 우려가 배어있다.

오늘날 5월이 오면 화사한 날씨 속에 어린이들을 데리고 나들이 다니는 젊은 엄마, 아빠들로 고속도로가 붐비고, 부모님께 드릴 카아네이션 파는 가게가 성업하지만, 두 기념일의 시원은 슬픔과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민간의 자정노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서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의 상업화를 비판하는 말도 들려온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나들이 갔다 와서 동무들끼리 누가 더 화려한 나들이를 즐겼는가 비교한다고 하고, 부모님들은 자식의 선물로 현금을 선호한다고 한다.

어린이날 행사가 시작된 지 9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나라 어린이의 위치는 가족구조의 밑바닥으로부터 핵심으로 바뀌었다. 유교사회에서 꼭대기의 권위를 누리던 부모님들이 가족구성원들로부터 받는 대접은 소유재산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생각이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다.

정부는 1973년 어버이날을 지정했지만 그 취지대로 노인과 어른을 공경하는 전통적 미덕이 우리사회에 확산된 것 같지는 않다. 어른 봉양과 경로사상은 현대 산업사회에 불필요한 전통적 미덕일까?

공자의 도는 어른을 윗자리에 놓고 아이를 밑에 두어서 위계질서를 확고하게 하라는 것보다는 상하간의 관계에 인(仁)을 실천하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공자는 인(仁)을 “己所不欲 勿施於人(자기가 바라지 않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가하지 말라)”이라는 구절로 표현한 바 있다. 공자의 가르침이 산업사회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어린이날은 망국노(亡國奴)들이, 어머니날은 전쟁의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일으킨 민간의 자정운동으로 시작되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 악습을 버리고 상처를 치유하며 산업을 건설했다. 산업사회의 물질적 풍요 속에 인간관계의 본질적 가치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금년 오월에는 가족윤리라는 것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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