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에 대한 단상
평화통일에 대한 단상
  • 강석승 원장
  • 승인 2019.05.1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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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승 /21C안보전략연구원 원장
강석승 원장
강석승 원장

[시정일보] 이 산과 저 들에 날로 푸르름이 더해가는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우리 곁에 다시 찾아왔다. 이런 신록(新綠)의 계절을 맞이하여 ‘평화통일’이라는 화두(話頭)를 떠올리는 국민들이 많을 것이다. 바로 작년 이 맘 때, 남북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판문점선언’을 내외에 공표했기 때문이다.

당시 거의 모든 국민들은 이 선언이 평화통일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며, 남북관계 역시 질적인 측면이나 양적인 규모에서 대폭 심화·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졌었다.

그리고 이런 분홍빛 기대감을 반영이라도 하는 듯 2차 남북정상회담을 거쳐 싱가포르에서는 북한과 미국간에 역사상 처음으로 정상회담이 개최되었으며, 이후인 9월에는 ‘평양선언’이 발표되어 그 기대감을 한껏 부풀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헤어진 혈육의 상봉이나 고향방문, 사회문화, 체육예술분야에서의 남북한간 접촉이나 교류, ‘유무상통(有無相通)’의 원칙에 따른 대북사업,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사업 등을 위해 통일부에 북한주민 접촉이나 방북신청을 하는 기관이나 단체, 개인들의 수(數)도 마치 '봇물이 터지듯'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말처럼 이런 기대와 바램은 지난 2월말의 제2차 북미 하노이정상회담 등으로 인해 북한측의 ‘완전한 비핵화문제’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크나큰 실망으로 다가오게 되었고, 급기야 얼마 전 군사분계선과 도보다리 등에서 열린 ‘4.27선언’ 1주년 기념식은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즉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고, 남북관계 개선, 연내 종전선언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회담”이 줄줄이 이어지기는커녕 북한당국은 어떻게 해서든 남북관계의 개선을 통해 평화통일의 기반과 토대를 구축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는 우리 정부에 대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할 소리를 당당히 할 것”을 요구하는 안하무인(眼下無人) 격인 행태를 보이기까지 하였다.

이 때문에 많은 국민들은 북한에 대한 실망과 함께 공분(公憤)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동안 이런 북한을 굳게 믿고 ‘우리민족끼리’ 정신으로 관계개선 및 평화통일의 장(場)을 열어가려던 “우리 정부가 너무 순진한 발상을 가지고 접근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게 울려나오고 있는 것이 바로 작금의 상황이라 하겠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길도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듯이' 섣부른 실망과 비관은, 정말 어렵게 일구어낸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 등 여러 가지 합의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럴수록 ‘냉철한 머리’로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 가운데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말고 그 근본적 원인이 무엇이고, 해결책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해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70여년간 서로 다른 정치이념과 체제의 틀속에서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반목과 갈등, 대립과 대결적 입장과 자세를 견지해 왔던 상황을 고려한다면, 우리에게 아무리 ‘평화통일’이 중요하고 절실한 과제라 할 지라도 그 길은 절대 일시에 전격적으로 이루어 질 수 없고, 보다 많은 시간과 쌍방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쉽게 뜨거워지는 냄비가 쉽게 식는 것'처럼 남북관계의 개선과 평화통일의 길은 그만큼 어렵고,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인내와 품이 들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잠시 숨을 가다듬고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북한을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보듬는 노력이 그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이를 통해 우리를 비롯한 전세계가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과제가 해결될 수 있는 방안과 대책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필자의 견해가 오롯이 북한만을 30여년간 연구하고 분석, 평가해 왔던 우둔하고도 단순하며 순진한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새삼 자위(自慰)해 본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면서...

 

※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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