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력 갉아먹는 허세병
국력 갉아먹는 허세병
  • 시정일보
  • 승인 2007.02.0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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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광 희 기획특집국장


허세가 내실을 뒤덮는 세월이 오래가면 개인, 기업, 국가는 종당에는 망하고 만다. 겉모양의 크기에서 내실의 크기를 공제한 잔여분을 허세로 규정할 경우, 이 허세의 비율은 곧 한 개인이나 조직의 건강상태, 또는 병적증세의 정도를 나타낸다.
고대 로마에서 구소련에 이르기까지 강대국의 멸망기에는 예외없이 국가적 내실로 뒷받침되지 않는 허장성세의 사회현상이 독버섯처럼 번졌다. 소련해체를 보면, 부실해진 국력으로 도저히 떠받치기 어려울 만큼 비대해진 당과 군의 중압에 눌려 국력의 기반자체가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그 중압은 바로 초강대국의 허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존재하는 허세의 크기와 그 해악은 어느 정도일까. 허세의 함량을 가늠해주는 실례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정치권에서 특히 선거철에 나오는 과대공약의 허구성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선전의 많은 부분이 과대포장돼 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정부활동부문에서도 허세의 흔적은 한 둘이 아니다. 정부 각 부처가 현실적인 재원조달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간헐적으로 발표하는 대형 사업계획은 허세의 전형에 해당된다. 실질적인 임기도 1년도 채 남지 않는 정부가 적게는 6~7년, 길게는 20여년이 걸리는 중장기 대책을 2~3주일에 한개꼴로 쏟아내고 있다.
최근 발표되는 대책들은 모두가 국민건강, 주택, 교육, 안보, 일자리 등을 좌우할 만한 ‘메가톤급’인 반면, 구체적인 실행계획이나 재원조달대책은 미흡해 설익은 대책을 서둘러 내놓고 있다는 지적도 그 한 예다.
기업경영과 국민들의 일상생활 속에도 허세는 깊게 자리잡고 있다. 기업의 기술개발과 품질향상의 속도가 굼뜨고 순이익이 감소하는 추세 속에서 유독 매출액만 급신장을 거듭해 온 사실은 경영의 주된 목표가 내실보다 외형에 있음을 말해준다.
큰 집과 큰 차와 고급 의상을 별나게 선호하고 집치장, 명품 선호에 열을 올리는 생활풍속, 사계절을 가리지 않는 해외여행 풍속도가 일상화된 허세의 사례들은 일일이 다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허세의 문화가 이토록 폭넓게 정착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으로 허세를 조장하는 사회적 동기가 강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간과하기 어렵다. 초라한 실체의 노출보다는 과장이 더 많은 이득을 불러온다는 계산이 개인이나 집단의 행동양식을 지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산업사회에서는 오랫동안 부가가치나 순이익에 한계없이 매출액과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사업의 성공에 가장 유리하다는 사고가 팽배했고 실제로 외형팽창은 소비자의 방응, 은행과의 거래, 관청과의 관계면에서도 여러가지 이득을 안겨준 것이 사실이었다.
이처럼 고질화되다시피한 외형중심의 사회적 평가제도 하에서 개인과 집단이 나타낼 반응은 뻔하다. 내실이 빈약할수록 더 많은 장식물을 첨가해 바깥모양을 크고 좋게 보이도록 애쓴 것이다. 공공, 민간부문을 가릴 것 없이 각종 행사에 모양갖추기가 성행하고 국회의 회의, 메스컴, 토론회, 공청회, 세미나에서 알맹이있는 얘기는 짧게, 변죽과 서론은 정황하게 개진되는 풍경을 한쪽에 두고 또 그것을 조장하는 사회적 평가관행을 방치해둔 채로는 내실있는 국가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민주주의의 허울이 실질을 앞서고, 경제의 체질이 웃자란 덩치에 못미치며, 사회가 곧잘 들뜬 분위기에 휩싸이는 것도 따지고 보면 허세문화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오는 당연하 결과로 파악해야 옳을 것이다. 허세를 부리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또 그것이 내실을 갉아먹는 파괴력까지 생각하면 허세병의 치유는 하루가 급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