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꺼짐 현상 주범 ‘낡은 하수관로’
세계최초 ‘부분굴착’ 신공법 개발
전체굴착 보다 예산절감·기간단축
전국서 벤치마킹, 대통령표창 영예
‘폐공캡 특허’ 등 지재권 구청에 넘겨
공무원으로 일하며 배워 ‘국민이 주인’
[시정일보]시민 두 명이 걷다가 갑자기 땅이 꺼져 바닥으로 추락한 용산 싱크홀, 다른 말로 ‘땅꺼짐' 사건은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 더 이상 땅이 안전하지 않단 걸 모두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2013년부터 매년 ‘땅꺼짐'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 원인 중 하나가 낡은 하수관로다. 낡은 하수관로에서 새어나온 물이 주변의 흙을 침식시켜 땅꺼짐 현상을 일으킨다. 하지만 관악구에서만큼은 땅이 꺼질까하는 걱정을 잠시 접어둬도 좋다. 관악구청에 하수안전의 달인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치수과 이성연 하수팀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 팀장은 2017년 ‘신개념 하수관로 부분 굴착 교체 공법'을 발명하며 구를 넘어 서울시 하수관로 정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 여태까지의 하수도 정비는 맨홀과 맨홀 사이 구간에 문제가 생기면 관을 전부 다 들어내고 전체를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팀장이 발명한 새로운 공법은 굳이 하수관로를 다 들어낼 필요가 없다. 문제가 생긴 곳만 들어내고 신규 관을 설치, 이음부에 보강용 거푸집을 장착해 모르타르를 주입하면 끝이다. 이 팀장의 새 공법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그야말로 ‘신개념' 공법이라 큰 화제가 됐다.
이 팀장은 신개념 하수관로 부분굴착 개량공법에 대해 “세 곳 정도가 부식된 하수관로 전부를 들어내 50m를 개량할 시 공사비가 5500만원 정도가 나오지만 새 방식으로 개량하면 1600만원으로 끝난다”며 “게다가 이전 방식으로 공사하면 일주일이 걸렸지만, 새 공법으로는 1.5일 정도면 끝나기 때문에 주민 불편 또한 대폭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도로함몰 예방사업에 이 팀장의 방식을 채택했다. 17년 하반기부터 일부 구가 이 공법으로 공사를 시작했고 18년도부터는 모든 구가 대부분 활용하고 있다. 또한 이 팀장은 신개념 공법으로 2018 중앙우수제안에서 전체 2위를 차지하며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이러한 개발엔 이 팀장만의 뒷 이야기가 있다. 대학에 다니며 20살에 공무원이 된 이 팀장은 22년 동안 공사부서에만 있었다. 이 팀장은 “힘들었지만 선배들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라 설명했다. 이 팀장은 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2012년도에 시공기술사까지 취득했을 정도로 일에 열정적이다.
이어 이 팀장은 또 다른 엄마라 표현할만큼 애틋했던 누나를 2015년에 교통사고로 잃고 그 현장을 찾은 경험을 풀어놓았다. 이 팀장은 “현장에 가보니 도로구조가 잘못돼 사고가 났단 걸 알았다”며 “보완시설만 제대로 돼있어도 누나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확인해보니 이미 전에 몇 번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고 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 시기 청룡초등학교 근처에서 땅꺼짐 현상이 또 일어났다. 그때 이 팀장은 결심했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누군가의 가족이 다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이 팀장은 “도로함몰의 주범은 하수관로니까 그동안의 경험과 지식을 이용해 내가 예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결론냈다.
그해부터 이 팀장은 2016년 말까지 1년 반 동안 개발에 착수해 배수관 연결구멍의 폐쇄를 막는 방법으로 도로함몰을 방지하는 ‘폐공캡'을 개발해냈다. 이 팀장의 첫 개발이자 특허작품이다. 이 팀장은 이 개발로 2017년 하수안전의 달인으로 선정된 바 있다.
열심히 개발한 특허권을 관악구청 앞으로 한 것이 아깝지 않았냐 묻자 이 팀장은 “이건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나 기술사 공부한다고 나올 수 없는 아이디어”라며 “국민들이 고용해주셨고 월급을 줬고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지식으로 개발한 것이니 지적재산권은 국민들에게 있다”고 겸허한 모습을 보였다.
관악구청 황의석 치수과장은 “이성연 하수팀장은 현장에서 문제점을 발견할 시 근본적 해결대책을 직접 만들어 내는 데 있어 공법개발 또는 제도개선에 대한 실행 능력이 매우 탁월하다”며 “특히 이러한 창의적 행정을 동료 및 후배 직원들과 함께 공유하고 모두의 역량을 키워가는 모습은 형제자매의 우애 있는 모습을 보는 부모 마음처럼 흐뭇하다”고 칭찬했다.
현재 이 팀장이 개발한 폐공법과 하수관로 부분굴착 공법에서 쓰이는 제품들은 관악구청의 이름으로 판매 회사와 계약을 맺어 판매 중이다. 이 팀장은 “제품화가 돼 현장에서 쓰이는 것을 보면 내 새끼 같아 뿌듯하다”며 “공사 현장에선 아무래도 새로운 시스템을 거부하게 되는 경우가 잦은데 직접 써보신 분들이 참 괜찮다, 잘 고안했다 하실 때 보람이 넘친다”고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게 끝이 아니다. 현재 이 팀장은 하수도 공사 품질 저하의 주범인 물을 막는 ‘물막이'를 개발해 특허 출원과 제작을 끝냈다. 조만간 사전판권 계약이 되면 시중에 풀릴 예정이다. 벌써 세번째 개발이다. 이 팀장은 “처음엔 일년 반이 걸리던 것이 그 다음엔 3개월이 걸렸고 그 다음엔 1개월만에 끝났다”며 웃었다. 조만간 공사현장에서 이 팀장 표 ‘물막이'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관악구는 3년 연속 행안부 하수도 평가에서 1,2등을 할 정도로 하수도에 대해 인정받고 있다. 이 팀장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다. 그동안 구의 하수관을 든든하게 지킨 이 팀장은 이제 하수도는 많이 개선이 됐으니 새 분야에도 도전을 하고 싶다 밝혔다.
“새로운 경험으로 견문을 넓히고 기회가 된다면 다른 분야에서도 개선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 이 팀장, 히어로는 영화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안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주는 이들이 바로 히어로다. 하수안전의 히어로 이 팀장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해본다.
김해인 기자 / sijung19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