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워커힐(Walkerhill)에서의 단상(斷想)
특별기고/ 워커힐(Walkerhill)에서의 단상(斷想)
  •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 승인 2019.07.2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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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시정일보]광진구 아차산 인근에는 워커힐이라는 지명이 있다. 특히 이 지명을 딴 호텔은 우리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워커힐이 6·25전쟁에 참전한 윌튼 해리스 워커(Walton Harris Walker)라는 미국 군인의 이름을 딴 것임을 아는 이는 드물다. 더 구체적으로 워커힐은 대한민국 정부가 1961년 주한 유엔군을 위한 휴양시설을 만들면서 특별히 워커 장군을 기리는 의미에서 붙인 명칭이다. 이 외에도 1987년에는 호텔 경내에 워커 장군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고, 2012년에는 12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윌튼 해리스 워커라는 인물은 누구이며, 왜 국가 차원에서 선양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일까?

윌튼 워커는 제1차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의 군인으로, 6·25전쟁 참전 당시에는 제8군 사령관으로서, 전쟁 초기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해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당시 낙동강 전선 방어의 성공 여부는 전쟁의 향방과 대한민국의 사활이 걸린 사안이었다. 이에 그는 예하 사단에 'Stand or die'로 요약되는 결사항전의 명령을 하달했고, 악전고투 끝에 북한군을 저지해냈다.  

워커 장군의 방어작전 성공은 예상 외로 강력했던 북한군의 전력에 더해 인천상륙작전 준비에 모든 증원전력이 투입되면서 낙동강 전선에 대한 지원이 충분하지 않았던 연합사령부의 내부적 상황이라는 이중고를 극복한 의미있는 결과였다. 이로써 국토의 8할을 잃고 망국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은 가까스로 국가의 운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또 한편으로 약 50일 간의 지연전은 인천상륙작전이 성사될 수 있는 시간을 벎으로서 아군으로 하여금 반격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 공로로 수훈십자훈장을 받은 워커 장군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23일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순직했다.

당시 윌튼 워커 장군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선이 급박하게 밀리는 중 놀라운 활약으로 은성무공훈장을 받은 병사에게 훈장을 직접 수여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 대견한 병사는 자신과 함께 참전하여 중대장으로 활약하던 외아들 샘 심즈 워커(Sam Sims Walker)였다. 이에 부친상을 치를 수 있도록 특별휴가가 주어졌지만 샘 워커는 선공후사(先公後私)와 부대원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중대장으로서의 사명을 이유로 특별휴가를 가지 않고자 했다. 결국 맥아더 장군의 명령으로 샘 워커는 귀국해야 했지만 아버지를 고국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은 뒤 다시 한국으로 건너와 1년의 참전 기간을 채우고 본국으로 전보되었다.
윌튼 워커와 샘 워커는 '미국 육군 역사상 최초의 부자(父子) 대장'으로서 미국 내에서 존경의 대상인데, 이유는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워커 부자는 존경과 감사의 대상이다.

워커 부자는 세대에 걸친 희생으로 대한민국을 지켜준 전쟁영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눈여겨 볼 점은 워커 부자 외에도 여럿의 미군 지휘관들이 같은 이유로 우리 국민들에게 감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무려 135명의 미군 장성의 아들들이 6·25전쟁에 참전했고, 이들 중 35명이 전사하거나 중상을 입었다. 밴플리트, 클라크 등 연합군 사령관의 아들들 또한 35명 중 한 명이다.

이렇듯 워커힐이라는 명칭의 주인공인 윌튼 워커는 6·25전쟁 초기 대한민국을 지키는 데 지대하게 공헌했고, 그 과정에서 아들인 샘 워커와 함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미덕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비록 미국인이지만 국가수호에 기여한 전쟁영웅이요,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공헌한 분들로서 그에 상응하는 예우를 하는 보훈의 대상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던 현충시설 건립과 전쟁영웅 지정은 물론, 오는 7월27일 예정된 제65주년 유엔군 참전의 날은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는 한편 UN참전국과의 우호를 증진하기 위한 대한민국 정부 차원의 노력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워커힐이라는 지명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비록 워커 부자는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워커힐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는 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워커 장군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고 부를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워커힐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워커 장군에게 바치는 송가(頌歌)와 같은 지명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