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품은’ 노량진2동에 다시 웃음꽃 활짝
‘난민 품은’ 노량진2동에 다시 웃음꽃 활짝
  • 김해인
  • 승인 2019.10.03 11:39
  • 댓글 0

동작구 노량진2동 박은영 주임/ ‘마을계획단’ 이끄는 똑순이

 

박은영 주임(맨 왼쪽)과 류인숙 동장(맨 왼쪽에서 두번째), 송인식 단장(가장 뒷줄 왼쪽에서 두번째)을 비롯한 마을계획단원들, 에티오피아에서 온 베티와 그 가족들이 ‘노량진2동 에티오피아 커피콘서트’ 행사를 진행한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박은영 주임(맨 왼쪽)과 류인숙 동장(맨 왼쪽에서 두번째), 송인식 단장(가장 뒷줄 왼쪽에서 두번째)을 비롯한 마을계획단원들, 에티오피아에서 온 베티와 그 가족들이 ‘노량진2동 에티오피아 커피콘서트’ 행사를 진행한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재개발 묶여 환경 열악, 난민유입 많아

주말도 반납 발품 팔며 마을계획단 모집

저소득 어르신 지원부터 난민교육까지

맞춤의제 발굴, 주민들 마을발전 ‘체감’

 

[시정일보]“받아줘서 고맙습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무척 기쁩니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에티오피아에서 온 난민이었다. 모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로 그를 환영했다. 이날 노량진2동 마을센터에서는 주민역량강화를 위한 난민교육 ‘노량진2동 에티오피아 커피콘서트’가 진행됐다. 동 단위로는 쉽게 볼 수 없는 행사다. 난민교육 후엔 커피로 유명한 에티오피아 특유의 볶은 커피를 직접 끓여 마시고 특산 빵도 잘라 나눠먹는 시간을 가졌다. 그 중 팔 걷고 나서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바로 이 행사를 마련한 노량진2동 마을계획단의 단원들이다.

‘마을계획단’은 서울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주민 역량 강화 사업으로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구에 맞는 다양한 마을계획 사업을 확대·운영하기 위해 마련됐다. 주민 스스로 지역문제와 해결방안을 공유하고 논의하는 공론장을 형성, 주민 주도로 마을을 발전시키는 게 주 목적이다. 현재 동작구에서는 7개 동이 운영하고 있다. 모두 각각의 목적과 열의를 가지고 노력하고 있는 마을계획단이지만, 노량진2동은 그 시작이 험난했다.

노량진2동의 대부분은 재개발 지역으로, 학교도 공원도 없는 열악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문화시설도 전혀 없다보니 이주민들이 많으며, 유입되는 주민들도 난민이 많다. 순수 원주민이 많지 않기 때문에 마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주민을 찾기가 어렵다. 누가 봐도 마을계획단을 꾸리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노량진2동에 부임해 마을계획단을 맡게 된 박은영 주임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박 주임은 주말도 반납해가며 꼬박 두달 가까이 노량진2동 주민들을 만나고 다녔다. 박 주임은 “하루에 네명은 만나야 한다”는 조건을 스스로 세웠다고 했다. 직접 발품을 팔아 주민 리더들을 만나러 다닌 박 주임은 만남 후에는 꼭 다음에 누구를 만나면 좋을지 추천을 받았다.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고 나니 마을계획단에 모집된 110명의 사람 중 90명 정도는 이미 직접 만나본 사이가 됐다. 류인숙 동장은 박 주임에 대해 “성실하게 업무를 추진하며, 낯선 곳에 와서도 즐거움을 찾아낼 수 있는 성격으로 주민들과 어우러져 노량진2동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인재”라고 평했다.

주말이 없던 박 주임의 노력 끝에 모인 110여명의 마을계획단은 한달의 기본 교육을 거쳐 지난해 11월19일 발대식을 할쯤엔 80명이 돼있었다. 현재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단원은 40명 정도로 단단한 중심동력을 가지고 굴러가는 중이다.

마을계획단 송인식 단장은 그 중심 동력 중에서도 핵심이다. 송 단장은 7개 마을계획단 단장 중의 회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유쾌한 리더쉽의 소유자며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박 주임은 “노량진2동 마을계획단은 단장 아래 가족이라고 할 정도로 단원들의 사이가 매우 끈끈하다”며 “단원들 사이의 가족 같은 분위기는 적극적 의제발굴과 행사참여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공직 퇴임 후 어떻게 마을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마을계획단에 지원하게 됐다는 송 단장은 “옛날에는 관에 요청하고 안 되면 항의하고는 했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며 “필요하면 주민 스스로 의제를 내고 검토한 후 관에 보고해 가능하다는 답이 오면 직접 사업을 시행하니 마을이 발전하는 게 피부로 느껴져서 좋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렇다. 저소득 노인층이 많은 노량진2동의 특징을 살려, 마을계획단에서는 ‘계절별 김장김치 담그기’라는 의제를 냈다. 어느 동이나 하는 연말 김장과는 차별화를 둬, 매 계절마다 김장해 이웃에 나누기로 한 것이다. 추석 전 마을계획단은 삼삼오오 모여 김장을 마치고 어르신들께 김치를 나눠드렸다. 노량진2동 마을계획단이 추진하는 사업은 이처럼 주민들이 직접 체감하고, 바로바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또한 스스로 의제를 발굴하다 보니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가장 부족한 것이 뭔지 잘 알고 있다. 문화생활이 부족하다 판단해 개최한 ‘동네음악회’부터, 동에 거주하는 많은 난민들을 이해하기 위해 연 ‘에티오피아 커피 콘서트’, 가라앉은 상가 분위기를 위해 장기적으로 추진하는 ‘상생지도 만들기’,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오는 노량진 수산시장을 위한 ‘외국어 관광 블로그’ 등 재치 있는 사업들이 많다.

이런 열정적인 마을계획단의 활동으로 인해 노량진2동의 분위기는 다른 동에 소문날 정도까지 크게 바뀌었다. 가라앉은 동네에 활기찬 기운이 감돌며 주민들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훨씬 밝아졌다.

마을계획단의 활발한 활동 뒤에는 류인숙 동장을 비롯한 주민센터 직원들의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도 있었다. 박 주임은 “노량진2동엔 물리적, 사회적 자원은 없지만 핵심적 인적자원이 있다”며 “단장님, 단원들, 주민들 그리고 동장님을 비롯한 센터 직원들까지 모두 하나가 돼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량진2동 마을계획단은 앞으로도 반짝이는 의제를 발굴하고 실천해 활발한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그들의 헌신적인 활동으로 인해 지금, 노량진 2동에는 더 좋은 동네가 되는 밑거름이 뿌려지고 있다.

김해인 기자 / sijung1988@naver.com